인간은 하나의 작은 우주다. 정신과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소우주이며 하늘과 땅과 그 사이를 흐르는 숨결을 닮은 존재다. 대우주가 신선과 인간 그리고 자연으로 이루어졌다면 인간은 그 거울처럼 서 있다. 작지만 닮아 있고 유한하지만 무한을 향해 열린 존재다. 그래서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을 듣고 때로는 신의 살아 있는 말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그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어느 날은 육체가 무겁게 가라앉고 어느 날은 정신이 불처럼 타오르며 어느 날은 영혼이 이유 없이 그리움으로 떤다. 우리는 오르내린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빛과 어둠을 교대로 지난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은 여러 개의 존재의 층위를 통과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층은 육체다. 배고픔과 피로와 욕망과 생존이 뒤엉킨 자리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하고 가장 연약해진다. 몸은 진실하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상처를 받으면 피가 흐르고 사랑을 잃으면 심장이 아프다. 이 단순하고 물질적인 층위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비루하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사실 이곳은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자리다. 살아 있으려는 의지, 숨을 붙들려는 본능, 쓰러지지 않으려는 근육의 떨림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감정의 층을 통과한다. 사랑과 질투와 슬픔과 기쁨이 밀려오는 자리에서 인간은 가장 인간답다. 우리는 누군가를 안고 싶어 하고 또 누군가에게서 도망치고 싶어 한다. 같은 입으로 축복을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상처를 품고 있고, 같은 손으로 쓰다듬으면서도 미세한 계산을 한다. 감정은 순수하면서도 교활하다. 그러나 이 층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깊어질 수 없다. 사랑에 실패해 본 사람만이 사랑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상실을 겪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울음을 오래 들어줄 수 있다.
세 번째 층은 정신의 자리다. 사유와 질문이 머무는 영역에서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묻는다. 여기서 인간은 처음으로 고독을 자각한다. 육체와 감정이 타인과 얽혀 움직였다면 정신은 혼자 선다. 생각은 결국 혼자의 일이며 질문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무게다. 우리는 이 층에서 스스로를 해부하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믿었던 가치가 흔들리고 붙들었던 신념이 부서진다. 그러나 그 균열 속에서 시야는 넓어진다. 정신의 층은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성장시킨다.
네 번째 층은 영혼이다. 이곳은 설명할 수 없는 침묵의 자리다. 말보다 깊고 생각보다 넓은 공간에서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르고 계산 없는 용서가 일어난다. 영혼의 층위에서는 더 이상 논리가 중심이 아니다. 거기서는 이해가 아니라 받아들임이 먼저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보다 자신이 작다는 깨달음이 먼저 온다. 우리는 이곳에서 비로소 겸손해진다. 자신이 빛인 줄 알았던 순간에도 어둠을 품고 있었음을 인정하게 되고, 자신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믿었던 순간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남아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그 위에 또 하나의 층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아를 넘어 ‘나’라는 경계를 벗는 자리, 상승도 하강도 사라지고 그저 존재하는 상태. 거기서 인간은 더 이상 오르지 않고 더 이상 증명하지 않는다. 그저 있다. 인정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고 사랑받지 않아도 사랑을 흘릴 수 있는 자리, 비교와 경쟁이 소멸한 고요의 층위. 나는 이 자리를 가장 높은 층이라 부르고 싶다. 그러나 그곳에 도달하는 길은 언제나 위로만 향하지 않는다.
존재의 층위는 아래로도 내려간다. 가장 낮은 지하층위는 망각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상태, 영혼의 빛이 희미해지고 육체의 욕망만이 남는 자리. 우리는 때때로 그곳까지 떨어진다. 모든 의미가 사라지고 모든 관계가 무너진 것 같은 순간에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지하에서 다시 시작이 일어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깊은 질문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잃었는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질문은 늘 바닥에서 올라온다.
그래서 존재의 층위는 계단이 아니라 파도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날에는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떤 날에는 한 줌의 먼지보다 못하다고 여긴다. 자존은 하늘로 솟고 자책은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빛과 그림자는 같은 몸에서 태어난다. 한 번이라도 심연을 본 사람의 눈빛은 달라진다. 그는 쉽게 단정하지 않고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타인의 어둠을 보았을 때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의 어둠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존재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다. 우리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조금 다른 높이에서 조금 다른 깊이에서 다시 만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고통을 겪어도 다르게 통과한다. 영혼은 그렇게 확장된다. 인간이라는 소우주는 고통을 통해 넓어지고 사랑을 통해 깊어지며 상실을 통해 단단해진다. 상승과 하강은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운동이다. 숨이 들고 나는 것처럼 파도가 밀려왔다 물러가는 것처럼 존재는 그렇게 살아 움직인다.
결국 존재의 층위는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자리를 통과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한 인간은 멈추지 않는다. 존재는 완성된 건축물이 아니라 계속 지어지는 집이다. 우리는 오늘도 한 층을 더 올리거나 한 층을 더 내려가며 산다. 그리고 그 오르내림 속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신의 형상을 닮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