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쉬운 일이 아니다

by 이 경화


기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며 무작정 앉아 있는 상태가 아니다. 기다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정교하며 무엇보다 깊고 단단한 결을 지닌 감정이다. 그 안에는 희망과 불안 기대와 체념 애틋함과 단념이 뒤섞여 있다. 어떤 날은 한없이 가볍다가도 어떤 날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진다.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가도 어느 순간 지친 마음을 안고 주저앉게 된다.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그 모든 감정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함께 끌어안는 일이다.


나는 기다린다. 당신이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라 혹여 오지 않더라도 나는 여기에 있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은 쉽게 지나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가도 어떤 날은 아득하게 멀어져 마치 영영 닿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기다림은 기대라기보다 인내에 가깝다. 조바심을 누르고 초조함을 안은 채 버텨내는 일.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손에 힘을 주었다가 다시 천천히 풀어놓는 일이다.


기다림은 때로 깊은 고독을 데려온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문득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온 세상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만 정지해 있는 것 같고 내가 기다리는 그 사람은 어디선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기다림이 곧 외로움과 같은 것은 아니다. 기다림이 있기에 나는 어딘가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을 누군가를 믿는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그 사람이 어딘가에서 한 발 한 발 걸어오고 있으리라는 믿음. 그래서 기다림은 외롭지만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는 아니다. 쓸쓸하지만 텅 빈 것이 아니다.

기다림의 자리에서 나는 나를 정돈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당신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지 무너져 내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기다림 속에서 나는 나를 가다듬는다. 당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서. 기다림은 상대를 향한 행위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나를 향한 시간이다. 내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내가 내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기다림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세운다.


해 질 녘이 되면 바람조차 숨을 죽인다. 언덕 끝에 선 풀잎들이 온몸을 곧추세운 채 노을을 기다린다. 햇살이 지나가고 붉은 빛이 내려앉을 때까지 그들은 묻는 듯하다. 언제 물들까 언제 붉어질까. 그러나 노을은 풀잎의 애타는 기다림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제때에 머물고 제때에 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노을이 지나간 자리에도 풀잎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풀잎을 더 곧게 세우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림은 끝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서 다시 쌓이고 또 쌓여 새로운 기다림이 된다. 기다림은 반복된다. 기다림은 만남을 품고 있지만 만남이 끝난 뒤에도 또 다른 기다림을 낳는다. 기다리던 사람이 와도 그 순간이 지나가면 또 다른 기다림이 시작된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다릴 것이다. 당신이 오기를 혹은 내가 그곳으로 가게 되기를. 그 길의 끝에서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될 시간을.


기다림은 결코 가벼운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때로는 흔들고 시험하고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기다림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간절할 일도 애틋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기다림은 하나의 이야기다. 기다렸기에 만남이 소중해지고 기다렸기에 사랑이 깊어진다. 기다렸기에 함께하는 순간이 빛을 얻는다.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