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by 이 경화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화와 균형에 맞추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배운 태도가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길들여진 감각에 가까웠다.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할 때도, 가슴이 뛰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한 편의 오페라나 뮤지컬 영화를 볼 때도 나는 늘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빛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빛을 가능하게 한 어둠은 어디에 있는가. 나를 울리고, 멈춰 세우고, 오래 머물게 한 장면들에는 언제나 그 둘의 균형이 있었다.
나는 한때 밝은 것만을 사랑하려 했다. 환한 얼굴, 성공의 서사, 고통 없는 이야기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장면들은 오래 남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 남은 것은 어둠을 통과한 빛이었다. 깊은 골짜기를 지난 뒤에야 마주한 능선의 풍경처럼, 눈물 끝에서 겨우 웃어 보이는 얼굴처럼, 그 빛은 스스로를 과장하지 않았다. 어둠이 있었기에 빛은 빛이 되었고, 상처가 있었기에 온기는 더 또렷했다.

인생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강하고 화려한 성공만을 거머쥔 사람보다 좌절과 한숨을 딛고 묵묵히 자신의 삶을 지켜온 사람에게 더 깊은 매력을 느낀다. 그 사람의 말투에는 결이 있고, 눈빛에는 층이 있다.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 그것은 실패의 흔적이 남긴 무늬다. 나는 그 무늬를 사랑한다. 상처를 지나온 사람에게는 함부로 타인을 재단하지 않는 신중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이란 빛과 어둠의 대비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지나치게 밝으면 형체가 사라지고, 지나치게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적절한 그림자가 있어야 사물은 입체를 얻는다. 종교 역시 다르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교리라 해도 약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한다면 그 빛은 눈부심일 뿐 온기가 아니다. 진짜 빛은 어둠을 인정한다.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안에서 길을 찾는다. 나는 그 태도에 마음이 움직인다.

우리가 갈망하는 천국 또한 땅과 단절된 곳이 아니라 이 땅과 이어진 자리일 것이다. 하늘만을 말하면서 땅을 경멸한다면 그것은 균형을 잃은 신앙이다. 물이 그러하듯 차가운 성질을 만나면 얼음이 되고, 뜨거운 성질을 만나면 수증기가 되며, 설탕과 섞이면 단물이 되고, 흙과 섞이면 흙탕물이 된다. 본질은 변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에 따라 다른 얼굴을 갖는다. 인간도 그렇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단단해지기도 하고, 흐려지기도 하며, 때로는 스스로를 낯설게 느끼기도 한다.

빛과 어둠은 본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빛이 없다면 어둠도 설명될 수 없고, 어둠이 없다면 빛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는 늘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려 하지만, 사실은 그 사이를 건너며 살아간다. 슬픔 속에서 기쁨의 씨앗을 발견하고, 기쁨 속에서 언젠가 찾아올 상실을 예감한다. 삶은 늘 혼합 상태다. 완전한 낮도 완전한 밤도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기쁨과 슬픔 또한 잠시 찾아온 인생의 손님일 뿐이다. 나는 실패를 겪으며 비로소 내 욕망의 모양을 보았고, 상실을 겪으며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깨달았다. 그 전에는 알지 못했다.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시절에는 감사도 얕았다. 잃어본 뒤에야 비로소 붙들고 있던 것들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행복이 영원할 수 없듯 불행 또한 머무를 수 없다. 나는 불행이 끝날 것이라고 믿지 못했던 밤들을 지나왔다. 그러나 아침은 결국 왔다. 죽음이 있으면 다시 삶이 있으며,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따른다. 가득 차면 넘치고, 넘치면 덜어야 하며, 달이 차면 기울고, 죽은 풀도 다시 살아난다. 이슬이 사라진 듯 보이다가도 이튿날 아침이면 다시 맺히는 것처럼 자연의 모든 섭리는 끝없이 순환하며 하나의 환을 이룬다.

나는 그 환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본다. 지금의 좌절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지금의 기쁨도 언젠가는 다른 얼굴로 바뀔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에 매달려 절대화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영원한 것은 상태가 아니라 흐름이다.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움직이는 존재다.

“세상을 둥글게 살아라.”

이 말은 단순히 모나지 말라는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과 순환을 이해하며 살아가라는 뜻이다. 둥글다는 것은 양극을 품는다는 의미다. 나와 다른 생각을 밀어내지 않고, 상반된 감정을 부정하지 않으며, 빛과 어둠을 모두 인정하는 태도. 둥근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맞물려 있다. 지금 불행하다면 다음 차례엔 다른 얼굴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가진 것이 있다면 나누고, 내 것이라 여긴다고 해서 영원히 내 것이 될 수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지려 하면 잃고, 내려놓으면 오히려 얻어지는 것이 삶의 이치다. 나는 여러 번 움켜쥐려다 흘려보냈고, 내려놓는 순간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화와 균형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한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빛을 과신하지 않으며, 오르막에서 교만하지 않고, 내리막에서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그것은 신념이기보다 생존의 방식이다.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길은 한쪽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둘을 함께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설명하듯, 기쁨과 슬픔이 서로를 깊게 하듯, 나 또한 나의 상처와 함께 나라는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둥글게, 그러나 흐릿하지 않게, 균형 속에서 단단하게 하루를 연다. 나에게 그것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