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도 모르게 암흑 속을 더듬던 시절이 있었다. 손끝으로 겨우 윤곽만을 더듬으며 무엇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도 모른 채 어떤 인연은 왜 나를 휘감고 스쳐 갔는지 알 길이 없던 날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이 인연이 나에게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수많은 질문들을 달고 살아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그 모든 만남은 꼭 그때여야만 가능한 꼭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들 같았다. 나는 내게 다가왔던 모든 인연들을 이제야 지혜의 선생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이 선하고 악하다는 이분법으로 나뉘듯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 시절도 있었다. 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했고 처음 본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어주곤 했다. 마치 평생을 기다렸던 이처럼. 그래서일까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 사람을 통해 위로받고 싶은 욕망이 컸던 나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내게 찾아온 인연 중 한 사람도 허투루 온 이는 없다는 것을. 그 진실 앞에서야 나는 비로소 사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내려놓게 되었다. 마치 손에 쥔 풍선을 하늘로 놓아주듯 인연도 손아귀에서 조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날려보내야 진짜 그 사람이 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세 살배기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풍선을 놓아주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놓아주기로 했다. 풍선은 원래 날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사람도 각자의 자유로운 하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배움이었다.
누구는 상처만 남기고 떠난 이도 있었지만 그 역시 내 인생에서 단단함을 더해 준 이였다. 조각가가 날것의 돌을 조심스럽게 깎아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것처럼 어떤 인연은 나를 날카롭게 다듬었고 어떤 인연은 내 안의 부드러움을 일깨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만남을 고마운 스승이라 부른다.
사람이 사람에게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그것은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옳았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의 나가 되었다는 이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이따금 생각한다. 앞으로 나를 찾아올 인연들에게 나는 어떤 스승이 될 수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혼란과 상처 속에서 길을 잃을 때 나와의 인연을 통해 조용한 위로 하나라도 건넬 수 있을까. 아니 그저 따뜻한 손 한번 내밀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오월이 되면 유독 마음이 그런 쪽으로 기울어진다. 봄은 사람의 마음을 연다. 잊고 지내던 사람 멀리 떠나간 사람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문득 안부라도 묻고 싶어진다.
그동안 내 곁을 스쳐 간 인연들 그 중 어떤 이는 다시는 볼 수 없고 어떤 이는 여전히 가끔 내 소식을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때로는 그 질문 하나로 가슴이 찌릿해진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살아 있는 동안 나의 인연들에게 한 번 더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이 지쳤을 때 내가 그들에게 바람이 되거나 물이 되거나 잠시 쉴 그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인연 속에서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