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할수 없는것들

by 이 경화


'불가사의(不可思議)'는 본래 불가(佛家)의 언어에서 유래한 말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세계를 가리킨다. 삶에는 가끔, 아무리 애써도 설명되지 않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인연과 감정의 결을 마주할 때, 우리는 불가사의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은 이해할 수 있는 것에만 안도하며 살아간다. 생각할 수 있고, 정의할 수 있고,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만을 사실이라 여기고, 삶의 틀로 삼는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 틀 바깥에서 움직이며, 가장 깊은 진실은 종종 이해의 언어가 아닌 침묵의 체험 속에 숨어 있다.


어떤 인연은 그 시작도, 끝도 명확하지 않다. 누가 먼저였는지, 무엇이 계기였는지조차 분간되지 않은 채 마음 한편에 조용히 자리하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러한 관계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왜 이 사람만이 나를 이토록 흔드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대답을 원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이미 삶의 오래된 신비에 닿아 있기에, 오히려 불가사의(不可思議)라는 말 외에 다른 언어를 붙이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모든 인연은 설명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미 신비의 범주에 속한다. 사랑도, 이별도, 다가감도, 물러섬도 계산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서로의 운이며, 그 흐름의 결은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오래 가슴에 남는다.


삶은 많은 경우 계산할 수 없는 무수한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날은 기적처럼 맞물리고, 어떤 날은 사소한 오해 하나로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가기도 한다. 우리는 그 모든 우연과 어긋남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그것들이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삶이 선택한 방식일 수 있다는 가정을 떠올린다. 그럴 때, 불가사의는 현실을 포기하는 회피가 아니라, 오히려 삶에 대한 가장 겸허한 이해 방식이 된다.


인연 또한 그러하다. 반드시 설명되어야 하고, 납득되어야 하며, 마침내 해석되어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설명은 우리를 안도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진실에 도달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되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든 논리와 조건을 벗어나 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불가사의의 영역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단순한 호의나 이해, 공감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다. 어떤 이는 전혀 이유 없이 깊이 끌리고, 어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가까워질 수 없다. 때로는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알고, 마음보다 운명이 먼저 길을 낸다. 그 흐름을 억지로 해석하려 하지 않고, 다만 스치는 바람처럼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고요한 평화에 도달하게 된다. 불가사의는 어쩌면 그런 평화로 이끄는 문턱이다.


이해할 수 없기에 더 사랑하게 되는 일, 설명할 수 없기에 더 기억하게 되는 사람, 그리고 이유를 찾지 못해 끝내 가슴에 남는 감정들. 그것들은 결코 실패한 인연도, 미완의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말로 다할 수 없기에 온전히 진실이었고, 그 자체로 존재의 증명이자 흔적이었다. 우리는 그 결을 따라 살아가고, 언젠가 우리 안에서 그것들이 하나의 빛으로 모일 것임을 믿는다.


불가사의란 말은 어쩌면 가장 정직한 표현이다. 감정을 감정 그대로 놓아두고, 인연을 인연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태도. 그 태도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설명을 내려놓고 사랑을 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다. 모든 이해는 유한하고,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을. 불가사의는 모호함이 아니라, 말 너머의 진실을 향한 가장 깊은 인식의 시작이다.

이전 11화무애와스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