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와스캔들

by 이 경화


세상은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 흐름 어딘가에 멈춰 서 있었다.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어떤 말 한마디였을 수도 있고 오래된 표정 하나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이 바깥에서 비롯된 것이든 내 안에서 태어난 것이든 간에—그 모든 걸림이 나를 정지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이름을 갖게 된다. 본명 외에도 누군가의 친구 자식 동료 이웃 때로는 연인이라는 역할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이름들엔 언제나 기대가 따라붙고 때로는 그 기대가 보이지 않게 우리를 감싸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보호막은 이내 우리가 벗어날 수 없는 틀이 되어가기도 한다.


스캔들이란 단어는 그래서 종종 오해된다. 오늘날 스캔들이라 하면 누군가의 도덕적 실수나 사생활이 폭로되는 일쯤으로 가볍게 여겨지지만 그 본래의 뿌리는 전혀 다른 의미를 품고 있다. 그리스어 "스칸달론(skandalon)"—즉 걸림돌이라는 뜻을 지닌 이 단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기대를 흔들어 놓는 충격을 의미한다.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어 평온을 어지럽히고 존재와 존재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어떤 일.


그 걸림은 언제나 조용히 생겨난다. 누군가 기대하던 모습에서 조금만 어긋나도 그것은 어느새 스캔들의 씨앗이 된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자주 잊는다. 말 한마디 옷차림 하나 침묵의 길이조차 누군가에겐 실망의 근거가 되고 무수한 오해와 해석이 꼬리를 문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때로는 자기답지 않은 모습으로라도 그 틀에 맞추려 하며 하루하루를 지나간다. 그것은 단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곤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떻게 나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


무애(無碍)는 그 반대편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불교에서는 무애를 '걸림 없음'이라 해석하며, 마음이 어떤 대상에도 막히지 않고 흘러가는 경지를 뜻한다. '무애변'이라 불리는 네 가지 무애—법무애, 의무애, 사무애, 낙무애—는 진리를 전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언어와 의미, 자비의 흐름이 막히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무애는 어떤 틀에도 머무르지 않고 말이 막히지 않으며 감정은 흘러가고 생각은 얽히지 않게 하는 마음의 태도다. 걸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걸림이 생기더라도 거기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흐름에 가깝다. 초연함이나 무관심이 아닌 다 알고 다 들으면서도 매이지 않는 너그러움 같은 것이다.


나는 그런 무애의 사람을 몇 번 마주친 기억이 있다. 그들은 말이 많지 않았고 조용히 웃었고 누구의 말도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유로웠고 칭찬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으며 비난에도 마음을 묶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은 단단하되 부드러웠고 눈빛은 따뜻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고 나는 나로 있어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는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때때로 말을 아끼고 시선을 피하며 존재 자체를 작게 접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은 또 다른 걸림을 만든다. 진짜 나를 드러내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도 완전히 사랑받지 못하는 감정 속에서 외로움은 자라나기 마련이다. 무애는 그 반대편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세상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길을 보여준다. 나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 방식. 그것은 어떤 기술이나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이자 조금씩 익혀가는 삶의 습관에 가까운 것 같다.


삶은 무수한 시선들 속에서 펼쳐지기에 우리는 언제든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애에 가까워질수록 그 소란은 점점 바람처럼 지나가게 된다. 흙탕물이 튀어도 옷은 젖을지언정 마음은 젖지 않는 상태. 그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라는 단어를 삶 속에서 실감하게 된다.


나는 이제 걸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기대에 얽매이기보다는 진심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상처조차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무애란 결국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걸림이 있어도 흘려보내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스캔들보다 더 조용하고 깊은 혁명일지 모른다.


무애의 길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과 나 자신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놓는 일이다. 억지로 붙잡지도 않고 애써 밀어내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스며들게 두는 마음. 말이 닿으면 말하고 눈빛이 닿으면 웃으며 인연이 닿으면 잠시 머물다 조용히 떠나는 일.


그 모든 흐름을 문득 이해하게 된 어느 아침 나는 조용히 커튼을 걷고 햇살을 맞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었지만 그 아무 일도 없음 속에서 나는 문득 고마움을 느낀다. 스스로의 마음을 조금 덜 움켜쥘 수 있게 된 이 평온이 내가 오늘 숨 쉴 수 있는 이유가 되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