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면 왜 우리는 늘 '다른 어딘가'를 꿈꿀까."
나는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발 딛고 있는 현실만을 존재라 믿지만 내게는 언제나 그 이면에 또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창문을 열고 바람이 들어올 때 그 바람 너머에는 감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가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차원을 만들어내고 나는 그 경계에 자주 멈춰 선다.
차원은 단지 과학의 언어로 설명되는 축이나 공간의 확장이 아니다. 내게 차원이란 한 존재가 경험하는 삶의 깊이와 마음의 층위 감정의 결로 이루어진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누군가는 단조로운 표면만을 지나고 누군가는 그 속에서 몇 겹의 심연을 마주한다. 그 겹의 수만큼 우리는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해 있다.
우리는 하나의 육체를 가진 단일한 존재 같지만 실은 수많은 차원을 오가며 살아간다. 낮의 나는 사무적인 언어로 일상을 감당하고 밤의 나는 이름 없는 감정들과 대화하며 침묵 속을 걷는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울고 있으며 미래를 상상하는 나는 시간의 문턱을 넘어 다가오고 있다. 나는 하나의 내가 아니라 여러 겹의 나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차원이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의 차원이 완전히 포개어지는 일은 없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고 눈을 맞추고 함께 웃지만 그 모든 교류는 각자의 차원 너머를 기웃거리는 시도일 뿐이다. 한 사람의 고독은 하나의 차원이다.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서로의 차원은 포개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랑은 비극이 되고 어떤 이해는 늘 조금씩 어긋난다.
그러나 어긋남 속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차원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것은 이해하려는 몸짓이기보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존재와 존재가 닿으려는 절실한 의지다. 아주 가끔 차원이 겹치는 순간이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순간 멀리 있어도 문득 생각이 나는 순간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의 교차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여러 개의 문을 지나며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닮았지만 다르고 내일의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차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때로 그 차원들은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나를 고요히 안아주며 스러진다. 내가 느끼는 슬픔도 기쁨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차원 간의 진동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차원이 다르다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세계가 넓다는 뜻이니까. 내 차원이 느린 날 누군가는 빠르게 걸어갈 것이다. 내가 어둠 속에 머물 때 누군가는 빛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삶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떤 차원에 머물고 있는가. 그곳은 고요한가 아니면 흔들리고 있는가. 누군가가 당신의 차원에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면 당신은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와 당신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