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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인도네시아

by 지난날

내가 다닌 학교는 현지인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함께 다니는 국제학교였다.

인도 재단이라 인도 선생님이 유독 많기는 했다.

언어는 반드시 영어를 사용해야 했고, 모국어 사용은 금지되었다.


전교생 통틀어 한국인은 나와 친구 둘 뿐이었다.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지만 당연하게도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나는 주로 운동장에서 놀고 친구는 주로 실내에서 놀았음에도

묘한 동질감에 서로를 찾아 일부러 정반대의 공간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다 딱 한 번 무심코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선생님께 걸린 적이 있었다.

모국어를 사용한 학생은 묵언수행을 하며 각종 벌칙을 수행해야 했는데

나는 묵언수행을 하며 유아 보육반을 청소하는 벌을 받았다.


처음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 반에서 묵언수행이 무슨 벌칙이 될까.


하지만 여러 명의 아이들이 여기저기 어질러 놓은 장난감은 혼자 정리하기에 너무 많은 양이었고

갑작스레 엎질러진 물을 치우려 걸레를 찾아다니다 울컥 하는 기분까지 느껴야 했다.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도 말을 못한다는 것은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목소리를 저음으로 내리 깔고 "안돼" 한마디 해줘야 기강이 잡힐 텐데 말이다.

아무 말도 못하는 것보다는 영어라도 있는 것이 소중함을 느끼게 된 이후,

나는 한 번도 학교에서 한국어를 쓰지 않았다.


영어를 배우며 나는 처음으로 친구들과 더 깊게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하루는, 축구수업에서 내가 다른 친구에게 '오늘의 선수' 트로피를 뺏겼다.

선생님은 내가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하면서도,

더 좋은 태도로 서로를 격려하고 팀워크를 보여준 다른 친구에게 트로피를 수여했다.


나는 그 이후 트로피를 되찾기 위해 친구의 말과 행동을 비슷하게 따라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과 좋은 리더십이 무엇인지 느끼고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에는 무작정 다같이 시끄럽게 웃으며 노는 걸 좋아했다면

이후엔 상대방의 생각과 의사를 물어보고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하는 놀이가 좋았다.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 덕분에 나는 나이스한 영어 표현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영어로 소통할 때의 내 인격을 꽤나 좋아했다.


언어가 인격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나는 훠궈 냄비처럼 순한맛 매운맛 반반 정도의 어중간한 인격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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