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뜀틀

@ 한국

by 지난날

선생님 허락 없이는 지정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분위기

네모난 교실에서 네모난 책상에 앉아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는 교실

눈치껏 숨죽이게 되는 중압감에, 말 한 마디 쉽게 내뱉기가 힘들었다.


쉬는 시간 종이 치면 교실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아이들,

갑작스레 시끌벅적해진 분위기에 덩달아 긴장이 풀리지만

변해버린 공기가 낯설어 괜히 책 한 권을 뽑아 그 뒤로 얼굴을 숨겼다.

잘 읽지도 못하는 한글이 너무 빼곡해 눈알이 핑핑 돌았다.


점차 교실이 난장판이 되어갈 때쯤,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방금까지 맘껏 웃고 소리 지르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교실은 침묵의 장이 되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선생님게 후려 맞은 아이의 뺨에 손자국이 붉게 달아오르자

쉬는 시간의 열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내려앉았다.

미처 화장실에 다녀오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인생 최대의 인내심이 발휘되는 순간에 생리현상 쯤이야.


다시 쉬는 시간 종이 울렸지만 얼어붙은 분위기는 쉽게 깨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운동장에 나섰다.


누가 더 많이 뜀틀 뛰기를 연속해서 성공하는지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모래 날리는 운동장에서 검은 타이어 위로 뜀틀이라니!

악당에게 납치된 어린이 포로들이나 할 법한 일이라 생각했다.

얌전히 행동하면서 살아남다 보면 히어로의 구출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모든 시도마다 경쟁임을 의식하며 힘껏 뛰어드는데

희한하게도 각자의 기록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게임의 승패를 뒤로한 채,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하루 빨리 학교를 졸업하는 종이 울리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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