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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 인도네시아

by 지난날

사계절 내내 여름인 나라에서 살 적에는

어디에나 수영장이 있어 원없이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다 함께 수영을 배우러 매주 수영장을 찾았다.

나는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기 보다는

하늘을 보며 물에 둥둥 떠있기나 깊은 수영장 바닥을 짚고 올라오는 걸 좋아했다.

어른용 풀장의 깊고 파란 물에 머리를 파묻으면 특유의 포근함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보통의 아파트 단지에도 놀이터는 없을지언정 수영장은 필수로 있었다.

친구 집에 슬립오버를 하는 날이면 수영복은 필수 준비물이었다.


친구와 서로 눈짓을 주고받고 어른용 풀장에 슬리퍼를 툭 빠뜨리고는

그걸 핑계 삼아 깊은 풀장에 잠수를 시도하며 슬리퍼를 구해내기도 했다.

아이고, 또 떨어졌네? 넉살 좋은 연기가 잘 통하는 날은 무한반복이었다.


학교에서도 목요일마다 서틀을 타고 근처 야외 수영장에 가서 물놀이를 했다.

락커에서 수영장까지 걸어가는 바닥이 너무 뜨거워 발걸음이 빨라지면

빨간 모자를 쓴 안전요원이 뛰어다니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가까이 보이는 수영 풀에 우르르 들어가 발 온도를 식혀가며 다니는 것도 우리 나름의 놀이가 되었다.


특별한 규칙이나 활동이 짜여져 있던 건 아니었다.

자유롭게 실컷 놀다가 머리도 다 말리지 않고 셔틀버스를 타면

시원한 에어컨을 맞으며 빵이나 과일같은 간식을 먹었고

누군가의 선창으로 목청껏 만화 주제가를 부르다 보면 학교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의 수영은 활동이나 운동이라기보단 움직임이었다.

땅에서보다 무겁게 움직이는 팔다리를 서서히 움직이며

몸 사이를 흐르는 물길에 내 몸을 맡겨보는 여유로움이었다.


그 모든 움직임을 수영이라 부르는 것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자유형 할 때는 팔 각도가 어쩌고, 평형 할 때는 다리 모양이 어쩌고,

누가 바른 자세를 가르쳐 준다 한들 나에겐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게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 사실은 물에 들어가는 데에 나에게 목표란 없었기 때문에

나의 움직임은 물의 흐름 만큼이나 자유로웠다.


만족스럽게 물에 불은 몸을 따뜻한 타월 위로 뉘었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중력에 무거워진 눈꺼풀이 마음의 짐을 가져가는듯

수영하는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깊게 잠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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