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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 Dec 01. 2023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죽지 않고 살아있다. 혹자는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것이라고 하는데 내 생각엔 아마도 죽을 순번이 되지 않아서 살아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휙휙 변했다. 너무 빨리 바뀌어서 그 소리가 귀에 울리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때 나는 정말 죽으려 했고 이런 노력 없이도 삶의 고통은 죽음처럼 밀려왔다. 어이없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다. 모든 날이 유서였고 그 당시의 내가 쓴 글들은 종종 현시점에서의 나를 소망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안정이고 평안한 날들이 내게도 오길.' 그렇게 쓰인 글을 읽을 때면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찾지 못하겠다. 지금의 나는 번듯한 직장도 있고 돈도 그럭저럭 잘 벌고 있다. 똥차라고 비난하지만 아무렴 5년은 족히 굴릴 수 있는 차도 가지고 있다. 김조한의 '사랑에 빠지고 싶다'가 떠오른다.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영화도 챙겨보곤 해. 서점에 들러 책 속에 빠져서 낯선 세상에 가슴 설레지' 그래, 요즘 토씨하나 안 틀리고 딱 저렇게 산다. 헌데 왜.


 요즘은 나란 사람이 퍽 재미없게 느껴진다. 학부시절 때만 하더라도 위트 있는 교회오빠, 유쾌한 대학생으로 나름 컨셉에 성실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말은 재미없는 사람으로 변한다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철든다'라는 말의 의미가 사리분별을 하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사실은 Fe를 뜻하는 말이었던가. '철'처럼 차갑고 무거워서 감동도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변하려면 긴 시간 동안 가열해야 그나마 잠깐 벌겋게 달아오르는 속성을 은근히 돌려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신년의 행복을 암울한 연말이 돼서 계획하는 일에 대해 어찌 된 영문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다시 한번 화력 높여 살기로 했다. 남들은 마흔이 넘어서야 맞이한다는 안식년을 앞 날 창창한 청년 따위가 맞이했으니 이만한 궁상이 따로 없지 싶은 마음에 그랬을지 몰라도, 딱 숯불만큼만 뜨겁게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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