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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Feb 27. 2024

내 인생을 바꿔주신 선생님께

너무 늦게 전하는 마음

  지난 설연휴 몇 년 만에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젊고 패기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하나같이 뚱뚱한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꿈 많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요즘 근황을 전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지만, 결국은 고이 간직해 온 추억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5학년 때 선생님이 떠올랐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최근에 A 선생님 소식 들은 사람 있나?"


돌아온 대답은 말문을 턱 막히게 했다.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던데. 한몇 년 됐을걸?"


  믿어지지가 않았다. 20년 전 학창 시절, 겨우 이십 대 후반의 선생님이셨다. 아직 한창이실 거라고 생각했기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었다. 언젠가 꼭 한 번 찾아뵙겠다고 생각하던 선생님이셨다. 조금만 더 출세하면, 조금만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면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 내 은사님이셨다고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그때 선생님 덕분이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조차 없다.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집에 돌아와 그 시절의 일기장을 살펴보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이렇게 선생님께 글을 남겨본다.


나의 은사님께


  선생님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5학년 1반 반장 경훈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뒤늦게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어 죄송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선생님의 부고를 접하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꼭 한 번은 뵙고 싶었는데, 언젠가 꼭 한 번은 인사드려야지 생각했는데 너무 늦었다는 아쉬움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과 교훈을 다 베풀지는 못했지만, 저도 선생님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항상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그 시절 일기장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5학년 때의 일기장에는 편지 형식의 글이 참 많았네요. 그중에서도 혼나고 반성하는 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봐도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일기장에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쓸 때면,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자주 답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당시 기억에 일기장을 돌려받아 선생님의 답글을 보고 기뻐 온 동네를 방방 뛰어다닌 적도 있고, 기대와 다른 답변에 실망한 적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한 답변을 듣고 싶어서 일기를 더욱 열심히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글쓰기의 시작이 그때였네요.


  성인이 되면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다고 덕분에 엇나가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조금 더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조금 더 멋진 제자로 기억되고 싶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이렇게 늦어버렸습니다.


  반장이라고 대표로 참 많이도 혼났었는데, 아마 선생님께서 지금 이 글을 보셨다면 또 늦었다며 혼내실 것 같아서 피식 웃음도 나옵니다. 그래도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바르게 잘 살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문득 저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두서없이 썼지만 그저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오늘따라 그때 그 시절이, 그때의 선생님이 너무 그립습니다. 선생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시길


하루하루 미루다 20년이나 늦어버린 2024년 어느 날, 제자 경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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