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중요한 순간에 늘 말을 아끼는가

우리는 늘 시간이 더 있을 거라 믿는다

by The 늦기 전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말이 늦어진다.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늘 한 박자씩 늦는다.


괜히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고,

괜히 분위기를 깨는 것 같고,

괜히 나만 유난 떠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입을 다문다.


돌이켜보면

상처가 두려워서라기보다

잃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이 말 하나로

지금까지 유지해 온 균형이 깨질까 봐,

괜히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일도 만들지 않는 쪽을 택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처도 없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감사했었다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그때도

지금 말하기엔 어색하다고 생각했고,

괜히 오글거릴까 봐 미뤘다.


그렇게 몇 번을 넘기다 보니

말할 기회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알았다.

말을 하지 않는 선택은

상처를 피하는 대신

좋아질 가능성까지 함께 지워버린다는 걸.


우리는 관계가 꽤 오래갈 거라고 믿는다.

내일도 있고,

다음 주도 있고,

언젠가는 또 기회가 올 거라고.


하지만 그 믿음에는

생각보다 근거가 없다.


어떤 말은

지금 하지 않으면

말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시간이 지난 뒤에 꺼내는 사랑은

이미 지나간 순간을

뒤늦게 붙잡는 일에 가깝고,


뒤늦은 사과는

그저 한숨만 길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중요한 말 앞에서

우리는 몰랐던 게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걸.


그런데도 애써 지나쳤고

지금도 그냥 넘긴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지금도

계속 미루고 있는 말 하나가 있다면,


그건 아마

나중에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말일지 모른다.


우리는 늘

시간이 조금 더 있을 거라고 믿지만,


그 믿음에는

보장이 없다.


ㅡ The 늦기 전에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와 소주 한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