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간다 해놓고 꽃을 사러 뛰었다.

결혼 6년, 연애 7년 그래도 아직 꽃을 산다.

by The 늦기 전에

눈을 뜨자마자 아내에게 운동 다녀온다고 말해두고 집을 나섰다. 사실은 꽃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그날은 결혼 6주년을 맞이하는 아침이었다. 연애할 때부터 지켜온 작은 습관이 있는데 그건 100일에 한 번씩은 아내에게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마침 결혼기념일과 100일 기념일의 주기가 겹쳤다.



평소처럼 운동복을 입고 휴대폰만 덜렁 들고 빈손으로 집을 나왔다. 늘 가던 집 근처 꽃집에 들러 꽃다발 하나 사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 운동하러 갔다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하필 그날이 휴무였다. 유리문에 붙은 ‘오늘 휴무’ 종이를 보고 잠시 멍해졌다. 그냥 돌아갈까 싶었다. 차도 두고 나왔고, 운동복 차림으로 멀리까지 가는 것도 애매했다.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면 이 아침이 조금 심심해질 것 같았다.


결국 휴대전화 지도를 켜고 가장 가까운 꽃집을 찾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가 보였다. 헬스장에 갔다 온 것처럼 보이려면 시간도 맞춰야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차를 타고 오기에도 애매한 거리라 그냥 뛰기로 했다. 그날 아침 운동은 헬스장이 아니라 꽃집까지 뛰어가는 일이 되었다.


꽃집 안에는 막 정리해 놓은 꽃다발들이 가득했다. 나는 꽃을 잘 아는 편이 아니라 한참을 서서 어떤 걸 살지 고민했다. 그중에 아내가 좋아할 것 같은 색을 하나 골랐다.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괜히 들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아침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탁 위에 꽃을 올려두고 편지를 한 장 썼다. 거창한 말은 없었다. 고맙다는 말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는 말 몇 줄이었다. 편지를 접어 꽃 옆에 두고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모르는 이벤트였지만, 혼자 들떠 웃음이 나왔다.


잠에서 깬 아내는 왜 안 깨웠냐며 투덜거리며 방에서 나왔다. 그러다 식탁을 보고 멈췄다. “이건 또 웬 꽃이야?” 하고 웃는데, 그 표정이 괜히 좋았다. 안 그래도 빈 꽃병을 보며 꽃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100일마다 오는 순간인데도 여전히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본다.



우리는 요즘 아끼자, 조금 더 모으자 이야기를 자주 한다. 그래서 장난처럼 “이제 꽃도 그만 살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건 안 된단다. 그 말을 듣고 괜히 뿌듯했다. 아마 나는 앞으로도 100일에 한 번씩은 꽃집에 가게 될 것 같다. 굳이 날짜를 챙기지 않아도 살 수는 있겠지만, 이 작은 반복 하나쯤은 오래 남겨두고 싶다.


우리는 연애를 7년 했고 결혼한 지도 벌써 6년이 되었다. 만난 지로는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특별한 이벤트는 거의 없어졌지만 대신 비슷한 아침들이 쌓였다. 같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고, 먼저 일어난 사람이 잘 잤냐고 묻는다. 100일에 한 번 꽃이 놓이고, 그 사이에는 별일 없는 하루들이 이어진다. 아마 관계라는 건 그런 보통의 날들로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ㅡ The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