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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늦기 전에
Jan 25. 2021
너도 나도 흙수저래, 그럼 난 뭐지?
프롤로그 - 빼앗긴 수저에도 밥그릇은 오는가
한 때, 수저 계급론이 유행처럼 번졌다. 제각각 수저 색깔에 따른 기준을 정하는 이들도 있었고, 본인의 수저 색깔에 낙담하며, 부자들을 향해, 그중에서도 소위 말하는 금수저, 다이아 수저들을 향해 부러움과 원망의 시선을 한 번에 쏟아 내기도 했다. 그렇게 흙수저 들은 좌절 했고, 금수저들은 단지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욕을 먹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자본주의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부자는 나름대로 부를 쌓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그러한 부를 대물림하려는 속성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이다. 아마 나 역시 부자로 태어났다면 높은 확률로 똑같이 대물림했을 것 같다.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다면 가진대로 많이 쓰고 정당하게 사용하고, 거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자세만 가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수저 계급론이 확산되면서 본인이 누가 보더라도 가진 게 많은 금수저 또는 은수저이면서도 흙수저인 양 행동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꽤나 많은 재산과 경험 자산, 인적자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총수, 정치인들처럼 자신들보다 더 부자인 자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낮춰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왜곡이 심했던 것이 경험 자산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시절'을 이야기했다. 다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거쳐 지금의 성공에 이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가난한 시절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 가난했던 '유학'시절, 가난했던 '명문대 재학'시절, 힘들기만 했던 '큰 기업의 재직'시절 등 과연 진짜 가난하다면 겪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경험들을 아주 힘들었던 시절로 포장을 하고 있다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기준에는 진심으로 힘든 시절이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누구보다도 어렵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유하고 있는 나로서는, 유학이나 명문대 재학 자체가 사치이자, 부의 상징이라 생각되었다. 감히 이야기하건대 금전적인 여유가 없다면 공부에 집중하는 것조차도 평범한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 계발서나 흙수저 성공스토리를 보면 저마다 힘든 시절을 이겨냈으니, 날 따라 하면 성공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 성공하려면 저 정도는 있어야 되는구나..'하고 오히려 좌절해버리는 경우도 많다. 바로 이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다. 자칭 흙수저 들은 자신의 배경은 애써 덮어둔 채 성공신화, 흙수저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어 또 다른 성공을 향해 가고 있고, 진정으로 힘들게 살아온 흙수저 들은 하루하루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렇게 하나 남은 초라한 흙수저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흙수저의 목소리를 내고, 진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성공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성공으로 향해 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딱 한걸음이면 된다. 그 작은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다음 발걸음을 옮기는 데는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그 한 걸음을 내딛는데 용기를 주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