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참 그게 아닌데...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북 한 권에 담았다. 글을 쓰는데 꽤 오랜 시간 정성을 쏟았다. 문장이 외워질 때까지 글을 읽었고, 퇴고의 과정도 여러 번 거쳤다. 물론 지금까지 기계설계 밖에 모르던 기계쟁이가 쓴 글이기에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와~이제 도저히 뭐를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싶을 정도로 고쳤으니 나름 만족한다.
그날도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어느덧 중반을 넘어 후반부 이야기의 뼈대를 잡고 있었고, 이미 써놓은 글도 이상한 점이 없는지 퇴고하느라 뇌에서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글쓰기 참 쉽지 않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아내에게 메세지가 왔다.
오빠 브런치 언제까지 할 거야?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인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먼저 드는 생각은 '혹시 기념일이 지나갔나?' 하는 것이었다. 브런치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려 기념일을 챙기지 못한 것은 아닌지 달력을 뒤져보았다. 다행히 큰 기념일은 다 지나간 터였다. 생각해보니 불과 얼마 전 결혼 1주년 파티를 했고, 결혼 400일 기념 꽃다발도 준비를 했었다. 다행이었다.
그럼 '브런치 자체가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브런치 어플의 유용한 점에 대한 대답을 준비했다. '좋은 글을 만날 수 있고, 나의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혹시 알아, 글쓰기 공부가 되어서 나중에 출판 제의를 받게 될지?' 따위의 답변을 준비하고 아내에게 답장을 보냈다.
"일단 할머니에 대한 브런치북은 빨리 완성을 하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글을 써볼 생각이야. 근데 왜?"
아내에게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이 오빠 불쌍하게 여기는 거 싫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할머니 이야기 속 내가 너무 불쌍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했다. 특히 감사하게도 내 글을 읽어준 분들이 댓글로 안타까워해주시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다고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답변에 당황하며,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해명을 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내의 말은 이랬다.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막 지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 글을 보면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아내이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글에서는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아내에게 설명을 했다.
"지금 쓰는 글은 할머니에 대한 글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럼 뭐 어떡하냐. 불쌍하게 산 건 사실이지 뭐.",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나중에 얘기하자."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변명을 하는 것 같아서 일단 아내에게 나중에 얘기하자고 말하고 급히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나서 글을 쓰는 이유를 고민해보았다. 생각해보니 슬프고 괴로웠던 과거의 기억을 자꾸 꺼내는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먹고살기 좋아졌다지만, 가끔씩 다큐채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내 힘들었던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가난이 일상을 괴롭히고 있었고, 부모의 부재가 가슴속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후원을 하고 싶었지만, 기관이나 단체를 신뢰하지 못해 속으로 눈물만 삼키던 참이었다. 그 생각을 정리해서 아내에게 말해주었다.
"자기, 진짜 불쌍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불쌍하다고 이야기 못해. 나는 지금 행복하기 때문에 과거의 불쌍했던 기억을 꺼낼 수 있는 거야.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도 어디선가 불쌍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분명히 도움이 될만한 사람이 있을 거야."
그래도 수긍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라떼는 말이야", "할머니 얘기 최대한 덜 불쌍하게 쓴 거야! 다 쓰면 눈물 펑펑 쏟아야 할걸?", "내가 가난해서 냉면 국물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나중에 밥 말아먹은 얘기 해줬나?" 등등 아내가 "아, 알았으니까, 그냥 해!!!"라고 할 때까지 설명했고, 브런치는 계속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난 왜 이뤄놓은 것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혔다. '다들 성공하고 잘 나가는 것 같은데, 책이나 TV에는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잘만 성공하던데 왜 나는 안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었다. 서른이 넘도록 남은 것이라고는 월급날만을 기다리는 직장인이라는 명함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겪은 이야기가 흔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몇 번을 포기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다. 어쩌면 이렇게 잘 버텨온 것, 잘 살아온 것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난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말을 하는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짜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썼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난은 '마음이 아프다'따위의 감성적인 고통이 아니라 우울증, 강박증, 폭식증, 피해의식 등 '진짜 질병'을 가지고 온다. 이는 실제로 겪어보아야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직접 경험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놈이 글을 써야하는 이유이다.
여보 미안해. 브런치 계속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