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늦기 전에 Apr 21. 2021

결핍이 주는 "중독증"

학창시절 술, 담배를 했던 학생이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변명

술과 담배를 하는 '학생'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생각이 드는가?


  왠지 사고를 치고 다닐 것만 같은 질 나쁜 아이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 학생이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역시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질 나쁜 아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고 해서 전부 다 엇나가지도 않거니와, 술과 담배를 한다고 불량 학생으로 단정 지을 수도 없는데 말이다.


  물론 나는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랐고, 술과 담배를 학창 시절에 시작했기에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 편견 가득한 시선이 너무나 싫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학창시절 일탈의 원인을 모두 '한 부모 가정'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중독에 노출된 환경.


   학생이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은 주로 부모와 학교의 역할이다. 술은 취기를, 담배는 냄새를 남기기 때문에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조기에 파악하고 일탈을 막아준다. 가정과 학교는 중독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어선이었다.


  하지만 한쪽 부모의 결핍은 그 방어선 중 일부가 뚫려버린 것과 같았다. 한 부모 가정이라고 하면 남아있는 부모와 자녀 사이가 끈끈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남은 부모는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에서 해주어야 할 역할을 못해주는 경우가 많다.


  내 아버지는 연안어선을 탔고, 한 달에 단 일주일만을 함께 보냈다. 할머니가 자주 와주시기는 했지만, 1년 중 절반 이상을 혼자 지내야 했다. 혼자 지내다 보면 유혹이 참 많았다. 서랍장에는 아버지가 사다 놓은 담배가 들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소주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에만 해도 변명이 아니라 정말 호기심이었다. 단순히 어른들은 왜 담배를 피우는지, 왜 술을 마시는지 궁금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는 많은 친구들이 호기심에 담배를 피워보고, 술을 마셔보았다. 그리고 친구들은 각 가정에서 호되게 혼나고 호기심에서 그칠 수 있었다. 나는 그럴 수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무도 혼낼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서서히 중독이 되어갔다. 분명 시작은 '담배가 있어서 피워보는' 단순 호기심이었으나, 어느새 '담배를 사서라도 피워야 하는' 중독 상태가 되었다.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면 너무 비겁해 보일 수 있지만, 어찌 되었든 유혹에 노출이 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 어린것이, 우습게도 담배를 끊고 싶었다.


  술은 여전히 즐기지만, 담배는 끊었다. 지금까지도 금연 성공은 내 대표적인 업적(?) 중 하나이다. 담배를 완전히 끊은지는 이제 5년 정도 되었다. 그러나 처음 금연을 시도한 것은 15년도 더 전에, 학창 시절의 일이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담배만큼은 너무나도 끊고 싶었다. 어른들처럼 많이 피우는 것도 아니었지만,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기분이 너무 싫었다. 또 없는 형편에 담배값을 감당하기도 힘들었다. 정말이지 끊고 싶었다. 


  하지만 끊는 방법을 몰랐다. 학교에 '금연캠프' 같은 것이 있기는 했지만, 금연캠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단 선생님들에게 담배 피우는 것을 들켜야 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이라는 낙인'이 찍혀야만 그곳에 참여가 가능했다. 그 시선이 두려워서 더욱 깊이 숨어야만 했다.


  지금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가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줬기에 가능했다. 또 전자담배라는 보조수단도 이용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학창 시절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훨씬 더 이전에 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편견 속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해주지 않았을 뿐.


  속된 말로 '잘 나가고' 싶어서 술, 담배를 하는 학생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단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불량학생이라고 단정짓는 시선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학창 시절 술과 담배를 했다. 그러나 불량학생은 아니었다고 자부한다. 아래는 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담임 선생님들이 적어준 코멘트이다.


1학년 :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사회 과목이 극히 우수함

2학년 :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범학생으로 지혜로움과 효성도 두루 갖춘 보기 드문 학생임

3학년 : 하는 일에 집념과 성취욕이 강하여 항상 일에 골몰하는 의욕적인 학생이며 매사에 솔선수범하는 모범생임.


  물론 중독의 시작은 한 부모 가정 즉, 가족 구성원의 부재가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의 편견과 색안경 쓴 시선 때문이었다. 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이 알려지면 '한 부모 가정에서 자란 질 나쁜 학생'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것을 숨겨야만 했다.


  만약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호기심에 그럴 수도 있다고, 니 잘못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숨어들지 않고 진작에 도움을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어른들도 끊기 힘들어하는 '중독'이라는 질병만큼은 색안경을 벗고 바른 길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나처럼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본다.  


  마지막으로 혹 담배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다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뜯어말리고 싶다. 그리고 호기심에 시작한 학생이 있다면 "분명 어느 순간에는 끊고 싶은 시기가 올 거고, 더 깊이 중독되기 전에, 학생 때 끊는 게 가장 쉬운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담배를 끊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가 브런치 그만하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