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늦기 전에 Dec 15. 2021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문제가 뭔지 모르는 게 진짜 문제

  최근 <기획은 2 형식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읽는 내내 '우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본질적인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갔던 사례들을 마주할 때면 스티브 잡스나 헨리 포드, 정주영 회장 같은 성공한 사업가들이 얼마나 창의적인 사람들이었는지 다시금 느꼈다.  


  전체 내용은 어렵지도 않았고, 핵심 메시지도 간단했다. 좋은 기획이란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 규정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기획이나 사업을 하게 되면 꼭 써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진짜 문제'를 규정하고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는 경우는 굳이 거창한 기획이나 사업이 아니더라도,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서 손해를 봤던 내 실제 사례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되짚어보았다.


 사례 1) 

  최근 아내가 사용하는 컴퓨터 중 한 대에 고장이 발생했다. 컴퓨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그래도 10여 년 넘게 컴퓨터를 다루는 직업을 가졌던 나에게는 컴퓨터 고장 시 대처하는 나름대로의 매뉴얼이 있었다. 


1. 컴퓨터 전원을 수차례 껐다, 켰다를 반복한다.

2. (1번 방법이 안 먹힐 경우) 컴퓨터 본체를 열어 RAM 등 부품과 내부의 선들을 뺐다 꽂아본다.

3. (2번도 안 먹힐 경우) 에어나 진공을 이용해 본체 내부를 청소한다.

4. (3번까지 안되면) 본체를 마구 때린다.


  큰 고장이 아닌 경우 2번까지 진행하면 정상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하지만 컴퓨터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동작하는 소리는 났지만, 모니터에는 뿌연 잔상만이 보였다. 본체 내부를 자세히 보니, 먼지도 자욱이 내려앉아있었고, 내부 부품들도 대부분 오래되어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컴퓨터 본체 수명이 다 됐네. 본체를 교체해야겠다."


  그렇게 바로 인터넷으로 중고 본체 하나를 주문했고, 이튿날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설치를 진행했다. 그런데! 새롭게 설치한 컴퓨터도 동작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진짜 문제'가 뭔지 고민하게 되었다.


"설마 본체가 문제가 아니었나?"


  그렇게 고장 난 줄만 알았던 본체에 다른 모니터를 가져와 연결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컴퓨터는 문제없이 잘 동작했다. 결국 고장 난 것은 본체가 아니라 모니터였다.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괜히 쓸데없는 본체만 하나 더 생겼다. 


사례 2) 

  날씨가 쌀쌀해지고, 코로나가 다시금 유행하는 요즘 우리 부부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은 '감기'였다. 사람을 상대하는 아내 직업의 특성상 감기와 같은 호흡기 질환에 걸리는 것은 코로나에 걸리는 것 못지않은 큰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목이 칼칼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러다 감기에 걸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었다. 집 내부의 온도를 그리 낮게 해 두지도 않았는데 왜 그런 것인지 의아했다. 검색을 해보니 낮은 온도 자체보다는 실내가 건조해지면 쉽게 감기에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곧바로 가습기를 구입했다. 그리고 편안한 아침을 꿈꾸며 가습기를 켜 둔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새벽, 답답하고 더운 기운에 눈을 떴다. 눈앞에는 온통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고, 몸에선 땀이 삐질삐질 나고 있었다. 급히 가습기를 끄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집이 건조한 게 문제가 아니었나?"


  그리고 습도계를 하나 구매해 방안에 습도를 재보았다. 겨울철 적정 습도가 40~60%라고 하는데 이미 안방의 습도는 70%에 달했다. 그렇다. 결국 아침에 목이 칼칼했던 건 춥다고 집안 환기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지, 습도 자체가 높은 것이 아니었다.(가습기를 켰을 때 방의 습도는 90% 육박했다.) 그렇게 불필요했던 가습기+습도계를 사느라 불필요한 지출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쓸데없이 지출했던 비용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진다. 위의 두 사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해 돈을 갖다 버리는 경우는 꽤 많았다. 대부분의 충동구매로 인한 후회 역시 문제를 잘못 정의하면서 발생하고 있었다. 

  

  이제는 섣부른 해결책보다 문제 규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아무리 좋은 해결책, 좋은 장비라고 해도 문제 규정이 잘못된다면 불필요한 시간과 돈을 잡아먹는 낭비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기획은 2 형식이다>에서 말하는 문제 규정의 중요성에 대한 구절로 글을 마칠까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가르쳐주더군요.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직업은 목수였습니다. 목수답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에게 나무를 벨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도끼의 날을 가는 데 사용하겠다." 기가 막힙니다. 보통 사람들은 8시간 주어지면 6시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도끼로 나무를 찍는 데 사용할 텐데, 링컨은 역시 고수입니다. 그 반대로 합니다.

-중략-

  제 식대로 전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에게 기획을 할 시간이 8시간 주어진다면 6시간을 P코드(문제)를 정의하는 데 사용하겠다."

  저는 링컨의 가르침대로, 기획에서 문제 규정에 75%를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제 경험적 통계에 의거해봐도 이 수치는 놀랍게도 거의 일치합니다.

- 남충식 저, <기획은 2 형식이다>, 휴먼큐브, 2015 -

작가의 이전글 결핍이 주는 "중독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