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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y May 05. 2024

나의 불행

나는 회피형 인간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외로웠다.


내가 회피형이 된 데에는 나의 기질적인 예민함도 한몫했겠지만, 불안정했던 가정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엄마의 기분은 시시각각 변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도, 어떤 날은 가라앉아 있거나 화가 나있었다. 그 기분의 변동은 예측할 수 없어서, 나는 집에 들어오는 게 늘 무서웠다.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 엄마의 심기를 거스르면, 나는 잘못하지 않은 일에도 엄마가 내는 화를 그대로 받아주어야 했다. 눈치보기 바빴고, 눈치를 보고 또 봐도, 아무리 눈치를 봐도 엄마의 기분을 예측할 수 없어서 슬프고 무기력했다. 


엄마와 아빠는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바라는 게 많았고, 아빠는 엄마가 바라는 남편이 되어주지 못했으며, 둘의 관계는 어그러지고 찌그러졌다. 둘의 냉전 기류는 나에게도 오롯이 느껴져, 냉한 집안 분위기는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심하게 싸운 날이면, 온갖 물건들이 날아다녔고 주방가위와 칼로 서로를 위협했다. 서로를 향한 고함과 나의 비명이 조용한 새벽을 가득 채웠다. 참다못한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었다. 다 같이 외식을 하러 나간 날에도 엄마는 기분이 안 좋으면,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식당을 나가버렸다. 나는 엄마, 아빠가 같이 외출한 날에는 그냥 둘 다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부모 없는 아이가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집에 없어야 그나마 마음이 편했고, 둘이 같이 있는데 사이가 좋지 않으면 나도 눈치 보는 음침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나는 그렇게 눈치 보는 어른으로 자랐다. 늘 중요한 건 상대방의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나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를 향한 무례를 참아내는 것이 당연했다. 무례를 참아내는 방법 밖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에 맞서 싸우면 더 큰 화를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나는 무례를 삼키는 방법 밖에 알지 못한다. 나는 관계에서 상대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게 무섭다. 상대의 싸늘한 표정이 무섭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을 뒷전으로 두고, 상대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나를 불편하게 하는 관계에서 도망쳐버린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존중받지도 못한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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