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관리를 하는 것은 수능공부를 하는 것과 같은 점이 있다. 기억을 떠올려 수능 볼 때를 생각해 보자. 수능 공부는 뭔가 열심히 하고는 있는데 막상 수능을 칠 때까지는 허상을 잡듯이 말 그대로 무언가 막연한 기분 속에서 살아간다. 중간중간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모의고사를 통해 나의 실력을 검사받고, 그 과정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아직 수능까지 시간이 있어"라고 가끔은 자기 스스로를 위로하지는 않는가? 그 외에도 수능의 특징 중 하나는,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일단 수능 성적이 나오면 점수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모두 수능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니 다들 잘 준비해서 원하는 결과를 달성했을까? 결론은 우리가 알고 있다. 수능을 잘 보기 위해서 공부해야 하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그 중요성에 비해 준비를 얼마나 절박하게 했었을까?
그럼 앞의 특징들을 당뇨에 대입해 보자. 수능과 마찬가지로 당뇨는 시작과 동시에 바로 우리 몸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당뇨가 무서운 점은 당뇨 그 자체가 아니라 당뇨로 인해서 발생하게 되는 당뇨합병증인데, 몸에 즉각적인 반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몸의 여러 곳들을 잠식해 나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지 않으면 당뇨의 진행과정을 지각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합병증이란 일생일대의 이벤트가 발생하기 전까지 환자는 스스로 혈당을 알아서 관리해야 하는 길고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특히 식단관리가 엄청나게 고독한데 이는 다음에 다뤄보겠다).
혈액순환 등의 문제가 누적되어 발생하는 당뇨합병증들은 일단 한번 발병하면, 그 결과를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결과들을 초래한다.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발병하는 당뇨발의 경우 환자의 약 15% 정도가 다리를 절단하게 되며, 신장이 망가져 투석을 받아야 하거나, 망막 내 미세혈관이 망가져 실명에 이르기도 한다. 특히 당뇨합병증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위의 가족들도 함께 지치게 만드는데, 당뇨발, 망막병증, 신장투석 등 어느 하나 주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병이 없다. 환자는 수능처럼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며, 내가 얼마나 열심히 혈당을 관리하는지에 따라 조절은 가능하지만 일단 한번 발생하면 그 간의 경로와 상관없이 되돌이킬 수 없다는 특성도 같다. 오히려 수능은 반수나 재수라도 있지 당뇨합병증은 그런 것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처럼 당뇨의 최종 채점 결과는 무시무시하지만, 진행과정 자체는 우리가 몸소 체험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당뇨를 생각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식단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 왜 우리는 과정에 둔감할까? 내 생각엔 사람은 눈에 닥친 결과가 아니면 먼 미래에 대해선 낙관적인 성향이 있고, 이는 현재 상태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자주 확인가능하냐에 따라 절박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현재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있고, 내가 한 노력이 나에게 어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방법만 있어도 동기부여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수능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수학실력이나 국어실력이 게임처럼 나의 상태창에 수치화되어 확인이 가능한가? 머리로는 지금 하는 공부가 누적되어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걸 알고는 있지만, 당장 현재의 삶엔 공부가 영향을 미치지도 않거니와 공부를 통해 얼마나 실력이 올랐는지 알 방법도 없기 때문에 가슴으로 와닿기가 힘들다 (오히려 안 할수록 현재는 행복하다). 그런데 공부스킬이 매일 수치화되어 확인이 가능했다면 사람들은 공부 스탯을 높이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게임 캐릭터를 키울 때 모자란 스탯을 보완하고 목표 능력치를 달성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공부 스탯을 판별하는 방법은 명확하지 않고, 가끔 실시되는 모의고사를 통해서 본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어림잡아 짐작할 뿐이다. 반면에 혈당은 어떠한가? 그나마 수능보다는 사정이 나은 게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보통 채혈을 통해 공복 및 식후혈당을 확인하여 혈당을 체크할 수 있고, 주기적으로 병원에서 당화혈색소를 검사하면 전반적으로 혈당이 잘 관리가 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혈당 관리에는 굉장히 큰 사기 아이템이 하나 더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몸에 부착해 혈당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주는 연속혈당계로, 혈당수치를 실시간으로 표시 및 기록해 주는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연속혈당계를 사용하기 전/후의 생활이 정말 다른데, 사용 후 식단관리를 더 타이트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결론적으로 약을 끊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용 전에도 운동 및 식단관리를 하고는 있었지만, 채혈과 연속혈당계를 비교해 보면 동기부여의 정도가 천지차이임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채혈이 매주 보는 쪽지시험 정도의 느낌이라면 연속혈당계는 선생님이 하루종일 감시하고 있는 야자의 느낌이랄까?
그러나 여전히 연속혈당계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며, 반성하건대 나도 당뇨 판정을 받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연속혈당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마저도 병원에서 망막병증 1단계 진행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뭐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함에 아내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이쯤 되면 아내가 필자를 살린 거나 다름없다). 도대체 자동으로 수치화해 주는 이 좋은 물건을 사람들은 왜 사용하지 않을까?아이러니하게도 이 또한 현재 느껴지는 고통이 별로 없다 보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몸으로 느껴지는 건 피로함과 식곤증 정도인데 이는 주위의 일반적인 한국 직장인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다). 주위에 연속혈당계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연속혈당계의 높은 비용과 함께 연속 혈당계 필요성에 대해 크게 느끼지 못하는 점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꼽는 경우가 많다. 당장 몸에 느껴지는 고통이 없는데 높은 가격의 연속혈당계를 사용해야 하냐는 것이 그들의 논지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당뇨는 관리의 필요성을 몸소 느끼는 순간 이미 늦어버린 상태다. 필자도 연속혈당계를 바로 사용하지 않았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면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지만, 뒤늦게나마 사용한 입장에선 존재를 몰라서 못쓰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연속혈당계를 사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고, 합병증 발병으로 삶의 질이 크게 감소하기 전 방법이 있다면 활용하는 것이 당장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남는 장사가 아닐까 싶다. 물론 노력하면 현재보다는 나아지기 때문에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일단 합병증 발병 전후엔 노력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확연하므로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선택이다. 만약 가격이 부담된다면, 최근에는 1형 당뇨 환자 외에도 임신성 당뇨 및 인슐린을 투여해야 하는 2형 당뇨 환자에게 연속혈당계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려고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모든 2형 환자에게 혜택이 확대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인슐린을 투여하지 않는 환자들은 논의의 대상으로 남겨져 있다. 그래도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발병 후 후회하지 말고 본인과 가족을 위해 연속혈당계는 꼭 투자했으면 좋겠다. 이미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