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는 죽기 전까진 끝나지 않는 불치병이지만, 한 번에 몸에 큰 불편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생활을 잠식해 간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에 비해 위험을 지각하는 시기가 매우 느린 병이다.
내 나이 33살, 처음으로 당뇨 판정을 받았다. 집안 내력도 있었고, 워낙 대학원 생활동안 몸을 혹사해서 건강이 나빠지고 있음은 느꼈으나 이렇게 빨리 몸이 망가졌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혹시나 싶어서 찾아본 대학원 건강 검진기록에도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공복혈당에 대한 경고가 적혀있었으나, 고작 혈당이 높으니 주의하란 안내가 전부여서 이게 무슨 의미를 갖는 건지 크게 지각하지 못했다.
지금 이 이야기에 대한 결론, 즉 내 상태는 현재 약을 끊은 채로 살아가고는 있으나 매일이 고통의 연속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약을 끊어서 행복하다기 보다도 언제 다시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약을 다시 먹지 않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수많은 즐거움들이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기왕에 사는 것 최대한 행복하고 건강하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재 내 생활의 목표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들은 내가 어떻게 병을 지각하게 되었고 어떤 노력과 경험들을 했는지에 대한 것들이며, 앞으로도 계속 관리를 해야 하는 나의 마음들을 담았다.
예전에 당뇨는 주로 40~50대 이후 발병하는 성인병이었으나 최근에는 식습관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아예 젊은 당뇨인이라는 신조어가 있는 만큼, 주위에는 젊은 나이임에도 벌써 공복혈당이 100이 넘어가는 당뇨 전단계에 속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곤 한다 (사실 이 글을 보고 있을 많은 사람들도 본인이 당뇨가 시작되었음을 지각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보통 당뇨 전단계에서 노력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그 노력을 평생 해야 한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몸에서 췌장이 평생 분비할 수 있는 인슐린 양은 정해져 있는데, 이는 이미 노화가 시작된 췌장은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로 당뇨든 당뇨 전단계이든 이미 정상인보다 췌장의 노화가 많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젊은 나이에 당뇨에 걸리는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당뇨를 지각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1) 젊은 나이에 당뇨에 걸릴 거라고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과 2) 당뇨의 증상이라는 것이 초기에는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당뇨 판정받기 전 건강검진 결과에는 3년 전만 해도 당뇨 전단계였었고 (당시에는 지각하지 못했음), 불과 3여 년 만에 그것도 30대 초반 젊은 나이에 갑자기 당뇨병이 심화될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당뇨 전 단계가 시작되면, 꾸준하게 관리하지 않을 경우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 문제는 대부분의 당뇨 전단계에 속하는 사람들이 당뇨에 대한 최소한의 경고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나의 경우에도 당뇨의 발견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주기적으로 받게 되는 종합검진에서 "당뇨 조심하세요~" 하고 알려준 게 아니라, 어느 날 아내가 밤에 자주 물을 마시고 (다음)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나는 나를 보고 (다뇨) 당뇨 걱정을 하기 시작했고, 난생처음으로 제대로 된 혈당 검사를 받게 되었다. 아내가 언급하기 전에는 이런 상황이 당뇨 증상인지도 몰랐을 뿐 아니라 당뇨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 한편에서 굳이 검사를 받아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아내에게 계속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아 일단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귀찮은 마음으로 동네 종합병원에서 받은 손가락 채혈 검사 결과에선 공복혈당 286이 나왔다 (100까지가 정상, 125까지가 당뇨 전단계이다). 결과를 들었을 때도 간호사 선생님께서 너무 덤덤하게 상급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 하셔서, 그냥 수치가 좀 높은 건가 싶어 병원을 나오면서 별생각 없이 인터넷을 찾아보았고 의심의 여지도 없이 너무 완벽하게 당뇨라 이게 뭔가 하는 생각에 병원 앞에서 한순간 멍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로 강북삼성병원 내분비과를 예약 후 방문하였고 당연하게 당뇨 판정과 함께 인슐린 투여를 권장받았다. 이때 내가 놀란 것은 나름 병원에 들리기 전 혈당을 낮춰보겠다고 이틀을 거의 밥을 안 먹다시피 하고 검사를 받으러 갔음에도, 절식이 무색하게 공복혈당은 200이 넘었다는 점이었다 (첫 검사보다는 떨어져서 200 초반이 나왔다). 나름대로 거의 채소만 먹고 탄수화물을 섭취를 줄였음에도 내 몸에는 포도당이 넘치다 못해 혈관에서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좀 절망적이었던 부분이기도 한데, "식단 조절 잘하시고 약처방 해드릴게요" 정도의 대답을 생각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인슐린을 투여하자고 처방을 받았던 점이다. 제발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씀드리면서 거의 무작정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느낌으로 인슐린 처방을 늦출 것을 간청하자, 선생님께서는 마지못해 약처방 후 일주일의 시간을 드릴 테니 수치가 개선 안되거나 약이 맞지 않는 경우 (환자의 경우 후술하게 될 메타포르민과 궁합이 맞지 않아 메스꺼움으로 인해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바로 인슐린 투여하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진료를 끝낼 수 있었다.
진료실을 나올 때만 해도 간절한 설득이 통했다는 마음에 살짝 흥분한 마음도 있었으나, 간호사 선생님이 다음 예약을 잡아주실 때 비로소 나에게 당뇨인이라는 말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암담함이 밀려들고 오로지 그때 생각나는 건 '내가 정말 당뇨에 걸린 걸까' 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현실적인 감각들 뿐이었다.
아마 우연한 기회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당뇨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된다. 여러분들이 나와 같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느낌을 갑자기 겪고 싶지 않다면, 이번에 받게 될 건강검진 혹은 이전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꼭 확인해 보길 바란다. 만약 공복혈당이 100이 넘었다면 병원에서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아보기를 추천한다. 이미 노화가 찾아온 췌장을 완전히 되돌릴 순 없어도 더 늦기 전에 노화를 늦출 수는 있으니까. 만약 이미 늦었다면 최소한 내 이야기에서 무언가 당신의 인생에서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그게 당신의 인생을 당뇨가 진행되기 전으로 되돌릴 순 없지만, 최소한 현재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사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