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선의, 그러나 나를 다독인 문장들
지인에게 “요즘 좋았던 책 있어요?”라고 물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최근에 『별것 아닌 선의』를 읽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며칠 후,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책을 발견했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의식되는 우연이라, 조용히 꺼내 들었다.
그는 참 친절한 사람이다. 대화 말미엔 꼭 물결 표시를 붙이고, 웃는 얼굴을 잘 지어 보인다. 그런 그가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친절한 이가 진절머리를 느낄 정도로 지쳤다는 뜻은 아닐까. 선의에 지친 마음이 궁금했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은 따뜻하고 단호하다. 작가는 말한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내 손에 못 박은 채로 살아갈 수는 없다. 연민은 쉽게 지치고 분노는 금세 목적지를 잃는다. 우리는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위로와 공감의 순간들은 분명히 있다고. 작가는 그러한 순간을 소중히 그러모음으로써, 우리가 가진 선의의 동심원을 넓혀가자고 투박하고 소박하게 제안한다.
가장 반가웠던 문장은 이거였다.
“내면의 돌덩이를 꺼내놓던 나로 인해 놀랐을 누군가에게 이해되었기를 빌었다.”
고민을 이야기하는 건 때때로 듣는 이에게 죄책감을 건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외로움’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그 이면까지 바라봐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게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 모른다. 동시에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하나 오래 남은 부분은, 사회에서 역할을 조금씩 갖게 되면서 느끼는 이미지와 정체성 사이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가는 말한다. 이상적인 거리와 간격 역시 직업적 연륜이 쌓이면 어느 순간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져 염려할 필요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만 미래 그 지점에 다다르기 이전에도 여전히 난 누군가의 선생일 테니,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만의 일관성을 구축해가는 과정 중에 만나고 헤어질 나의 학생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얕은 인성에서 나온 열의일지라도 꾸준하게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 문장에서 이상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다.
책은 말한다.
“삶에는 희망이나 꿈, 감정 따위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순간이 있다.”
맞다. 잔혹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그 약한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대단한 사랑이나 신념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선망과 갈망일지도 모른다. 그냥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 그저 그런 것들.
나약함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결국 ‘줄 수 있음’을 뜻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는 순간 우리는 기적을 경험한다.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그 나약함 덕분이다.
책의 한 구절.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두근거리며 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 오늘 나는 하루종일 잠을 잤다. 피곤해서. 피곤해서. 하지만 여전히 나의 오늘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통과하는 중임으로. 이 피곤함으로 둘러싸인 터널 하나를 그냥 순간을 묵묵히 걸어내고 있는 중임으로, 나는 오늘이 좋다. 완벽한 오늘이었다.
문득 본 지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가 바뀌어 있었다. “귀 기울이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