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마친 소감은 담쟁이덩굴이요.

by 영일이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햇살이 좋아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괜히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하늘도 보고, 건물도 보고, 잎도 봤다.

시간이 빠르게 가길 원한다면 바쁘게 살면 되고, 느리길 원한다면 세밀하게 살면 된다는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이사 온 지 벌써 6개월이 넘었지만, 이 동네는 여전히 낯설다. 매번 길을 잃는 기분. 골목을 돌면 또 나오는 골목. 나는 이 골목을 알지 못한다.

전선을 휘감고 자라나는 담쟁이덩굴을 보았다. 담쟁이 너는 벽이든 전선이든 붙잡을 수만 있으면 꼭 붙들고 기어오르구나. 햇빛을 향해 뒤엉킨 초록과 검정을 나는 느리게 바라봤다.

그때 인력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 잘 봤냐는 물음에 그냥 허허 웃었다. 담당자는 요새 나처럼 간절한 사람이 많다며, 되도록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아, 내가 간절했었나?’ 싶었다.

그는 합격이면 전화, 불합격이면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다. 양해를 구하며.

그래.

반가운 소식은 목소리로.
불편한 소식은 글로.

뭐든지 간절해지면 왠지 초라해진다. 아니, 초라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보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대한 문 앞에서, 빽빽한 이력서들 틈에서, 나를 관찰하는 눈빛 앞에서 자꾸만 작아진다.


나를 좋게 봐주세요.제발요.나를 잘 봐주세요.제발요. 흡사 유기동물센터의 강아지처럼 낑낑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허허허허 짐짓 점잖은 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지나친 두려움에 이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집에 거의 다 와서야 가방에 넣어뒀던 바나나가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 허기질까 봐 챙겨뒀는데. 마음이 허기질 때는 아무것도 씹고 싶지 않다는 걸 잊고 있었다.


문득 전선을 휘감고 오르던 담쟁이가 생각났다. 그는 간절함을 모른다. 그는 수치심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책 『별것 아닌 선의』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