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너를 다시 선택한다는 것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자유로운 사랑에 대하여

by 영일이

그들은 단순한 연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시간을 증명하는 철학이었고,
동시대를 함께 사유한 동지였다.

1930년대 파리.


담배 연기와 자유의 열기가 뒤엉킨 카페에서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렇게 만났다.

그들은 젊었고, 맹렬했고, 무엇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들이었다.

둘은 실존주의자였다.


인간은 본질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

그들은 철학의 언어로 사랑을 해석했고, 사랑의 감정으로 철학을 증명했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결혼도, 소유도 아닌 매일 새롭게 선택되는 자유로운 계약이어야 한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너는 나의 필수적 사랑이야. 다른 모든 관계는 우발적일 뿐.”

그 말은 삶을 함께 걸어가는 단 하나의 동행은 너라는 뜻이고 그 외의 감정들은 단지 일시적 교차일 뿐이라는 고백이었다.

둘은 결혼하지 않았다.
함께 살지도 않았다.
하지만 50년 가까이 서로를 가장 가까운 존재로 남겨두었다.

그들은 말한다.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동행이어야 한다.

그 말은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니라, 실존주의 윤리를 삶에 실천하려는 실험이었다.

그 관계는 아름다웠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연애와 감정을 서로에게 고백했고,
질투와 상처, 혼란과 외로움도 감내했다.

하지만 자유와 진실.
그 두 단어는 언제나 사랑보다 먼저였다.

보부아르는 회고했다.
“우리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만들고자 했고, 그 자유는 때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다시 선택되어야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2년마다 서로의 사랑을 ‘갱신'했다.

정해진 기한 없이 관성으로 이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다시 묻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너를 선택하나요?"

계약은 그들에게 구속이 아니라 가장 정직한 자유의 형식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결혼이 아니라 계약이었고, 계약이 아니라 존재의 반복적인 선택이었다.

보부아르는 노년에 말했다.
“그 사랑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 사랑이었다.”

질문이 남는다.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진심일 수 있을까.
계약은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완전한 자유 속에서도 사랑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은 50년 가까이 그 질문을 품고 살아냈다.
삶이라는 실험실에서, 철학이라는 도구로.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를
_“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_이라 했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_“내 사유 방식의 구조 자체”_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서로는 사랑이자 거울,
철학의 파트너이자, 생의 유일한 증인이었다.

관계는 멈춘 적 없었다.
그들은 매일 서로를 다시 선택했기 때문이다.

1980년, 사르트르는 세상을 떠났고
보부아르는 그의 곁에 묻히길 원했다.

지금도 그들은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나란히 누워 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무덤 ⓒwiki commons


그의 죽음 이후, 보부아르는 『작별의 의식』이라는 책을 남긴다. 그 마지막 문장.



그가 없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나는 사르트르를 사랑했고,
그와 함께 살았고,
그를 사랑하며 삶을 마무리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일생일대의 맹세가 아니었다.
존재를 매일 새로이 살아내는 용기였다.

사랑은 의식적인 반복. 가장 깊은 자유 속에서 다시 시작되는 선택이었다.

[사유의 여운 – 실존주의와 사랑의 재정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는 단순한 ‘특이한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둘러싼 모든 관습을 철학적으로 다시 묻는 실존적 실험이었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정해진 본질이 아닌 선택과 행동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존재”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사랑 역시 감정의 발현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실천되는 태도여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했다.
자유 속의 책임, 선택 속의 지속.
그들은 감정이 아닌 의지로서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다.

서로를 소유하지 않았지만 어떤 부부보다 긴밀하고 단단하게 이어졌던 이유.


그건 아마 그들이 ‘사랑을 매일 새롭게 갱신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지 아닐까.

1955년 중국 천안문 광장에 참석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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