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다. 창문을 열어보니 공기가 차갑다.
봄이 오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다.
어제 만난 남자가 말했다.
“인생은 본래 슬픈 거야. 고통이야.”
나는 그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사고방식이 지겹다고 느꼈다.
언젠가 나도 같은 생각을 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상은 언제나 수단에 머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내겐 낡은 생각일 뿐이다.
나는 기다리는 자로 남아 있지 않기로 했다. 행동하는 사람으로 영원해지기로 했다.
그 남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해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직업이 여행자세요?”
그는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퇴근은 언제 하세요?”
“밤 10시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일하시네요.”
그는 철학적인 척했지만, 실은 너무 익숙한 유형이었다.
세상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고, 여러 나라를 떠돌며 경험을 쌓았다는 남자. 프랑스와 콩고 어디쯤의 혼혈이라는 남자. 배경과 달리, 그는 흥미롭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삶이 고통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듣고, 오락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외면은 술이나 음악이 아니다.
진짜 외면은 나를 내버려 두는 거다.
슬픈 나와 술 한잔 마셔주지 않고, 춤춰주지 않고, 그냥 멍하니 휩쓸리게 놔두는 거다. 그러면서 “삶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것. 그게 외면이다.
그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했다.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죽고, 누군가는 천수를 누린다고. 선한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이 왕관을 쓴다고.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삶이 공평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이상했다. 공평함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절망할지도 모른다.
“그 어떤 삶도 각자의 방식대로 존엄해요.”
그게 내가 그에게 해준 유일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단지 헤어질 때 내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페미니즘 책을 읽는다고 했고, 연민과 연대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던 그가 결국 원한 건 이거였구나.
나는 섹스를 거절했다.
그는 세 번이나 되물었다.
“Really?”
그리고 내 궁둥이를 만졌다.
공짜로.
나는 생각했다.
그래 너의 인생에서 내 역할은 이것뿐이었겠지.
하지만 내 인생에서 네 역할은 뭘까?
아, 그래.
덕분에 오랜만에 방을 청소했다.
그게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