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소비가 아니다

by 영일이

여행을 가면, 우리는 늘 어떤 표식을 남기곤 한다.
사진을 찍고, 맛집을 찾아가고, 그곳의 공기를 폐 안쪽까지 들이마신다.
다녀왔다는 증거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처럼.

어쩌면 나는 한동안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화란 그런 식으로 ‘경험하는 것’이라고.
좋았다는 말 몇 개면 설명이 되는 종류의 것이라고.

그러다 어떤 순간에 문득,
문화가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층위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생활하고, 움직이고, 반응하는 그 모든 것들 뒤에서
조용히 방향을 틀어주는 어떤 결.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문화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몸을 기울일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바다는 오래전부터 부산의 사람들을 끌어당겨왔다.
높고 단단한 산들이 도시의 등을 차갑게 막아설 때,
바다는 늘 열려 있었다.
살 길이 바다였고, 일상이 바다였고,
누군가는 그 바람을 먹고 자랐다.

그래서 부산 사람의 말투가 조금 거칠어도
그 안에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면서도
한 번 마음 열면 오래 함께 가는 기질이 섞여 있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의지해야 했던,
그 긴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감각.

이걸 단순히 “부산 사람은 쎄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문화를 소비한 것이고
그 안의 오래된 이야기를 보지 못한 셈이다.

문화는 겉모습이 아니다.
누가 먹는지, 무엇을 입는지, 어떤 말을 쓰는지보다
왜 그렇게 살아왔는가를 묻는 태도에 더 가깝다.

같은 행동도 맥락을 알기 전에는
그저 ‘생활’이지만,
맥락을 알고 난 후에는
그게 하나의 ‘문화’가 된다.

누군가 말한다.
문화란 결국 생활양식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느낀다.

생활은 시간 속에 쌓여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은 의미를 만나 문화가 된다.
문화는 그 의미들이 가만히 서로를 비춰주며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문화는 소비할 수 없다.
보기만 해서는 닿을 수 없고
잠깐의 방문으로는 듣지 못하는 이야기들.

문화는 결국,
그 사람의 삶이 어떤 세계와 함께 있었는지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볼 때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장미만 보고 문화를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향기, 색, 사진, 예쁜 것들.
하지만 장미가 피기까지의 흙과 물과 계절의 법칙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그 문화의 절반만 이해한 채 돌아가게 된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삶을
사진처럼 소비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말투가 어디서 왔는지,
왜 어떤 행동을 고집하는지,
어떤 환경이 그 사람을 만들었는지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다.

그렇게 바라본 세계는
언제나 조금 더 따뜻했고,
조금 더 정직했고,
조금 더 깊었다.

문화는 소비가 아니다.
사람과 세계가 서로를 닮아온
긴 시간을 읽는 일이다.

그걸 이해할 때
비로소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정확히 사랑할 수 있단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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