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네

1월, 동해

by 영일이

동해에서 해를 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이라고 했다.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이미 날이 환해져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벌써 해가 떠버린 것 아니냐고.


살이 애는 듯한 추위 속에서
1일의 해나 어제의 해나
내게는 별반 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분명히 과학적으로는 다르다는 사실도.


그런 생각은 자꾸
생각을 먹고 자랐다.


제 몸을 양식으로 삼아 불어난 생명체는
그저 증식하는 것이 목적일 뿐
방향이 없다.


그 종양이 무럭무럭 몸집을 키워가는 모습을 보던 와중에
곡선의 붉은 형태가
바다의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의 환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태양을 너무 오래 바라보면 백내장에 걸린다고
너는 무드 없는 말을 했다.


그래도 나는 자꾸 보았다.
태양을 똑바로 보았다.
붉은 것과 함께
타들어가는 입김을 보았다.


어렴풋이 실감이 났다.
너무했다.


기어코 동해에 와서
기어코 떠오르는 해를 봐서.
울고 싶었다.


맛도 없는 동해의 12,000원짜리 드립 커피를 홀짝이며
따뜻했던 잔이 차갑게 식을 때까지
우린 기어코로 시작하는 결심들을
줄줄이 읊어댔다.


무심하려 해도
사랑스러운 것들이 너무 많다.


위장 무겁게 카페를 나서자
정오가 지났다.
창백한 달이 떠 있었다.


여기는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해와 달을 같은 하늘에서 볼 수 있네,
네가 그랬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지구와 태양이 가장 가까워지는 근시점의 1월,
북반구의 겨울에,
강원도의 동해가


이 모든 의미가
지나치게 소란스럽다.
간지럽다.


해서 나는 그냥
조그맣게
그렇네, 했다.


추위로
양 볼이 빨갛게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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