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스트 Oct 19. 2023

또 다른 오늘

시월의 오늘

산책을 나온 길마다 푸른 나무는 저렇게 붉게 노랗게 색을 갈아입고 있다. 떨어진 나뭇잎이 고와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진한 물감을 풀어놓은 듯 내 마음마저 흔들리게 한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오늘     


아침부터 싱크대 앞에서 뚝딱뚝딱 분주한 손놀림에 주방이 요란스럽다. 

색을 입혀 놓은 계절만큼이나 주방에서도 다양한 색채가 흥미롭다. 주홍 당근이며 붉디붉은 비트, 짙은 초록의 단호박, 샛노란 바나나에 옅은 미색의 마 가루 그리고 붉은 사과까지 자연이 뿜어내는 색을 안고 아침을 준비한다.

먼저 흙 묻은 주홍 당근을 소금으로 촘촘한 결을 따라 박박 문질러 흙을 씻어내고 붉은 비트도 깨끗이 씻어 주었다. 두 손 가득 들어오는 탐스러운 단호박 역시 소금을 이용해 다시 박박 문지른다.   

당근과 비트는 깍둑썰기하고 찜기에 넣어 덜 익은 상태로 맞추기 위해 시간을 조절한다. 

단호박은 통째로 접시에 받쳐 전자레인지로 직행.


아침부터 과채 수프를 만들기 위해 간단한 재료 손질, 소박하지만 건강한 수프로 맛도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즐겨 먹는 채소와 과일이다.

채소를 익히지 않고 그대로 녹즙으로 먹어야 영양소 파괴가 덜하다고는 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해 본 결과 나에겐 소화에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가열한 채소가 속을 편하게 하여 채소를 약하게 익혀서 수프를 만들어 먹고 있다.

깍둑썰기한 당근, 비트는 찜기에서, 단호박 하나는 통째로 전자레인지 안에서 다채로운 향을 풍기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마 가루와 바나나 하나까지 준비하면 과채 수프 재료는 끝이다. 거기다 사과 하나, 이것은 아침과 점심을 책임질 나의 소중한 먹거리다. 


어느 정도 식은 당근과 비트를 믹서기에 먼저 넣고 물의 양을 조절하며 믹서기의 버튼을 눌린다. 다음으로 씨를 발라낸 단호박, 마 가루, 바나나를 넣고 물도 추가해 갈아주면 단호박의 풍미도 느껴지고 생각보단 먹음직스러운 과채 수프가 완성된다. 

사과 하나와 과채 수프 한 컵을 아침으로 먹으면 속도 편하고 가벼워 꾸준히 먹는 나의 밥상. 점심을 먹기 전에도 과채 수프 반 컵을 먼저 먹고 식사를 한다.  

건강한 먹거리가 주는 행복한 일상은 몸도 마음도 편하다. 거기다 얘깃거리도 풍성해질 때가 많다.  


먹거리를 준비하거나 요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엄마와의 기억을 떠올리곤 하는데 먹거리엔 어쩜 그렇게 진심이셨는지, 다섯 형제 중 유독 몸이 약한 나를 걱정스러워하셨고 챙기셨다는 걸 어린 나이였던 그때도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지금 회상해 보면 어릴 적 밥상에 콩나물, 열무 같은 채소가 올라오면 다 씹지를 못하고 뱉어내는 때가 많아져 습관처럼 아예 멀리하고 씹을 때 편하게 넘어가는 멸치나 콩 종류 같은 것들을 가까이한 기억들이 있다. 오이나 참외 등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힘들었던 여러 종류의 먹거리에서도 멀어졌는데 나이가 들고 돌이켜 보면 그런 음식들을 먹기에는 ‘소화력이나 체질에 다소 부담스러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면 엄마가 만들어주신 호박죽 같은 부드러운 음식들이 무척 반가웠다. 호박죽 하나에도 정성을 얼마나 들였던지 아무리 흉내 내려고 해도 그 맛은 낼 수가 없다. 추억이란 양념이 가미된 그 음식을 어찌 흉내라도 낼 수가 있을까.


젊은 시절 그림에 몰두한 시간, 그때 두통과 소화가 안 되고 힘들었음에도 안일하게 몸을 돌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그만큼 골이 깊어졌지만 그림에만 전념한 시간 그리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몸에 대한 책임감도 뒤따르게 되면서 먹거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삶’에 대한 고민을 그림으로만 집요하게 토해내던 시절 뒤로 현실에서의 ‘나의 삶이란 무엇인가’도 중요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먹거리를 챙기면서 주방에 서 있을 때면 다섯 형제 그리고 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위해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엄마, 대가족의 건강을 그토록 챙겨주셨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금은 콩나물이며 열무도 먹을 수 있는 소화력도 생겨났다. 거칠고 질긴 섬유질 때문인지 끝까지 삼키지도 못했던 채소와 과일, 그렇게 기피하던 여러 채소와 과일을 좀 더 가까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여기에 마음먹기를 더하면 오늘을 사는데 행복 하나가 더 추가된다. 아무리 속 편한 음식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만병의 근원이 되기에 마음을 잘 먹어야만 한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나를 향해 의식적으로 웃어본다. 웃음을 생활화하면 마음도 금세 평온해진다. 무의식에서 오는 습관의 힘이다. 

오십 중반의 나이에 들어서 돌아보면 나의 삶도 나이를 먹을수록 여러 이유로 인상 쓸 일도 많았고 고민거리에 생각할 것도 뭐가 그렇게 많은지 떨쳐내려고 해도 잘되지 않을 때가 참 많았던 것 같다. 한 가지 잘한 게 있다면 긍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거다. 지금은 고민거리가 생겨도 반으로 털어내 버린다. 그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나 자신을 챙긴다. 그중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은 매일 연습이 필요한데, 해가 뜨는 아침, 언제부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의식적으로 거울 보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 기분도 상쾌해지며 행복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웃으니 행복하고 행복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을 품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