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투사된 아버지, 혹은 구조
BGM : 임이 오는 소리 - 영화 ‘아가씨’ ost 중에서
― 불안정한 애착과 경계성 인격장애, 그리고 첫 투사의 시작
참조하는 말: 경계성 성격장애와 불안정 애착에 대하여
나는 경계성 성격장애(BPD: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를 앓고 있었다.
진단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야 내려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증상은 이미 그 시절부터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나’라는 존재에 대한 중심이 없다.
자아는 불안정하고, 감정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친다.
가장 무서운 건 관계에 대한 감정 조절의 실패다.
버려질 것 같다는 공포,
그래서 더 집착하고,
그래서 더 금방 실망하고,
그래서 더 깊이 상처받는 패턴.
그 사람(선생님)은 나를 거절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받아준 적도 없었다.
그 침묵은 내 안에서 ‘해석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했고,
나는 그 공백에
나의 사랑, 나의 구원욕, 나의 상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건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자리마다
누군가를 들여다 놓는 방식이었다.
•
애착이론에서는
이런 유형을 불안정 애착, 그중에서도 불안형 혹은 혼란형 애착이라고 부른다.
안정적 돌봄 없이 자란 아이는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 아이는 자꾸 시험한다.
‘나를 정말 사랑할까?’
‘이만큼 해도 떠나지 않을까?’
‘그래도 안 된다면, 내가 먼저 무너져야 해.’
그건 사랑이 아니라,
결핍이 만든 생존 전략이다.
•
나는 선생님을 사랑한 게 아니다.
나는 ‘사랑을 받은 것 같은 순간의 나’를
광적으로, 필사적으로,
살기 위해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관계는 나를 구원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망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는 감정을 통해
내가 얼마나 무너져 있었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회복의 첫 문장이 되었다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그 사람의 손끝이 각을 맞추어 분필을 쥘 때,
나는 그 각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학생을 바라볼 때,
그건 나에게 “버림받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주었다.
그는 나의 선생님이었지만,
내게 그는 아버지였고, 보호자였고, 세상의 구조였다.
말하자면, 나는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사랑이라는 구조를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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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급식 시간은 벌처럼 쏟아지는 시선의 감옥이었고,
누군가 내 의자를 슬쩍 치우고,
내 이름을 빈 종이에 적고 욕설을 붙이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엄마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씹던 말끝을 뱉듯 말했다.
“넌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니?”
엄마는 세상의 균열처럼 날카로웠고,
나는 그 균열 위에 선 외줄 타는 곡예사 같았다.
나는 자주 상상했다.
어떤 어른이 나를 발견해 줄 거라고.
내가 너무 아파 보인다는 걸,
내가 혼자인 걸,
내가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걸—
누군가는 반드시 알아봐 줄 거라고.
그리고 그가 등장했다.
역사 선생님.
하얀 셔츠, 단정한 걸음, 고요한 목소리.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수업 시간만큼은 세상이 조용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질서, 그의 거리감, 그의 침묵을 사랑했다.
그것은 엄마의 소리 지름과 친구들의 수군거림과는 다른 무언가였다.
조용했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차가웠지만 일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처음으로 경험하는 ‘안정된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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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이상화된 전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를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것,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을
그에게서 보았고,
그걸 그의 존재에 입혔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나의 결핍을 설명하는 도구였다.
그를 통해 나는 말하지 못한 과거를 되짚었고,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사실은 나를 버린 아버지의 빈자리를 문장으로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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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성 인격장애는 흔히 말한다.
“당신은 나를 버릴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먼저 망가지겠어요.”
그 감정은 늘 무의식 아래에서 발효되었고,
나는 그를 보며
그가 나를 떠나기 전에,
그가 나를 거절하기 전에,
그에게 충분히 필사적인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부했고,
그의 말투를 흉내 냈고,
그의 수업에 과하게 반응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 애착 전략이었다.
•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하려 애쓴다.
왜 그토록 맹목적이었는지,
왜 그토록 갈급했는지,
왜 그토록 자기를 잃어가며 사랑을 했는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단지 너무 어린아이가
세상에 구조 요청을 보내던 방식이었다.
그는 구조하지 않았다.
그는 구원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그냥 지나쳤고,
나는 거기서
“나라는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새로운 상처를 하나 더 갖게 되었다.
•
그 사람은 내게
사랑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심리적 트라우마의 재연 장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믿으며
수많은 투사와 결핍과 이상화를
스스로 정당화해 온 것이다.
지금은 안다.
그 사람은 내 인생을 구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내 인생을 설명하려 애썼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금 말한다.
사랑은 없었고,
투사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