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가 보려고 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못 갔던 사마르칸트를 가 보기로 했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를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가장 편하고 빠른 교통수단은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기차 종류가 몇 가지 있지만 가장 빠른 기차인 Afrosiyob이 최적이다. 소요 시간은 편도에 2시간 15분 남짓 걸리며 약 300KM 이상 거리인 듯하다. Afrosiyob은 인기가 좋아서 약 30분마다 운행하긴 하지만 좌석이 금방 없어진다. 사전에 함께 갈 동료들에게 연락해 총 4명이 가기로 했다. 보름 전부터 우즈베크 기차예매 앱(UZ Railway)도 설치하고 가끔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고 했지만 원하는 날짜는 계속 예매가 안되고 물어볼 곳도 마땅찮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결국 출발 5일 전에야 출발 편과 도착 편을 예매할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에서 둘러볼 곳을 사전공부하고 동선을 대충 그려보았다. 이제 타슈켄트에 도착해 잘 자고 출발만 하는 되는 거다. 근데 복병이 나타났다. 가는 편수에 만석의 손님을 모시고 8시간 동안 시달리다 보니 호텔 도착 후 진이 다 빠져 버렸다. 최근 들어 가장 힘든 비행근무였다. 기차 예매가 없었으면 호텔에서 그냥 쉬었을 것이다. 그래도 힘든 몸을 이끌고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타슈켄트 중앙역(타슈켄트에는 여러 역이 있는데 Afrosiyob은 중앙역, 다른 종류는 남역에서 출발하기도 한다)으로 갔다. 택시는 Yandexgo 앱을 이용하면 가격을 미리 알 수 있어 편리하다. 처음 부른 택시는 가격이 가장 저렴한 것으로 했더니 한국의 Morning 만 한 택시가 와서 4명이 타기엔 좁았다. 다음번 택시부터는 Comport로 불러 이용했다.
역 청사를 중심으로 양 옆에 보안 검사대가 있는 출입구가 있는데 까다롭지는 않지만 공항 검색대와 유사했다. 예매한 기차칸을 확인하고 각 칸 입구에서 예매 내역과 여권의 이름 등을 보여 주자, 드디어 Afrosiyob에 탑승했다. 같은 열의 네 좌석으로 예매했는데 다행히 정방향이었다.(올 때도 같은 칸의 같은 좌석이었는데 역방향이었다) 출발 시간이 되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는 빈 좌석 없이 꽉 차서 가는 듯하다. 간식을 파는 직원이 두세 번 왔다 갔다 했다. 무료로 간식을 준다 했는데 아직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올까 기다리고 있는데 비행기의 Full Cart가 나타났다. 크루아상 한 개와 차나 커피를 준다. 우린 커피믹스를 가져왔기에 뜨거운 물을 주문했다. 시장기를 면하기에 적절했다. 중간중간 속도를 확인하니 최고 속도가 165km/h 정도까지 올라갔다.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니 사마르칸트에 곧 도착이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는 중간 정착역 없이 한 번에 도착이다.
역 앞에 나오자마자 Tour를 권하는 사람들로 걸음을 옮기기 힘들었다. 겨우 큰길로 나와 앱을 이용해 택시를 부르고 첫 목적지인 Registon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 앞에 내리자 멀리서 보이는 모스크의 웅장함에 살짝 경외감을 느꼈다. 여러 사람들이 사진 찍는 Spot에서 우리도 개별사진, 단체사진을 찍고 좌측의 출입구에서 입장권을 구매해 입장하기로 했다.
멀리서 보았던 사원 건물들을 가까이에서 보자 더욱 멋있게 보였다. 바깥 벽과 기둥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았고 중간중간 타일 같은 것으로 색을 표현했다. 천장과 내부벽은 프레스코화와 비슷하게 하얀 바탕에 기하학의 무늬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카메라로 다 담을 수 없음이 아쉬웠다.
지금의 건물들은 지진으로 무너진 걸 보수했다고 한다. 좌우의 첨탑은 살짝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건물의 내부 대부분은 기념품점으로 사용되고 있어 특별히 관심을 끌어당기는 것은 없고 천장 돔 내부 무늬만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으며 더욱 멋있게 보였다. 저녁에는 광장에서 레이저 쇼를 한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즈베크의 대중 음식, 특히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많이 먹는 솜사(Somsa)와 샤슬렉(Shashlik)을 점심으로 먹기로 했다. 조금 이른 시간인지 식당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친절한 직원의 도움으로 주문 완료하고 기다리는데 다른 한 직원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느냐? 자기는 영어를 배웠고 한국어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등, 적극적으로 많은 질문을 하였다. 현지 상황이 어떤지 몰라 적절한 대답은 못 해주었지만 금방 한국어도 잘할 것 같은 청년이다. 그 사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솜사가 예상보다 맛있었다. 바삭한 겉과 속의 고기들이 입맛에 잘 맞았다. 우리네 꼬치구이보다 고기가 더욱 두툼한 Shashlik은 고기 종류에 따라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배불리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앱을 통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타자마자 기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몇 가지를 물어보니 한국에 10년 넘게 살았으며 광양 지역에서 용접 기술자로 일하고 있단다. 지금은 고향에 두세 달 예정으로 방문 중이며 택시앱으로 하루 몇 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우습게도 사마르칸트는 떠난 지 오래되어 길을 잘 모른다고 한다. 오히려 여수, 광양 지역 길을 더 잘 안다고 한다. 한국에서 돈 벌어서 동생 둘 결혼도 시키고 집도 사 주고 했단다. 좋은 만남이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티무르 황제가 애첩을 위해지어 준 궁전인 비비하눔 사원으로 맞은편에 무덤과 함께 있었다. 남아 있는 부분은 화려하지만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아서 인지 사원 안쪽은 옛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곳의 전설은 방문 전에 각자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사원 앞에 놓인 거대한 책이었다.
비비하눔 사원 왕비의 무덤
비비하눔 바로 옆에 큰 시장인 시욤(Siyob) 바자르가 있다. 시장은 아주 크고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말린 과일부터 견과류, 양고기를 비롯한 육류 등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인 듯하다. 우즈베크의 국민 빵인 레뾰쉬카를 파는 상인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빵보다는 목이 말라 석류 주스 한 잔씩 하기로 했다. 즉석에서 짜주는 것이라 신선하고 상큼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에서 빠져나와 큰 길가로 나오니 무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구글을 검색하니 근처에 울루벡이 지은 공동묘지가 있다. 샤이 진다(Shai-i-Zinda)라는 곳인데 왕족들의 무덤을 모아 놓은 곳이라고 한다. 단순히 무덤이 아니라 모스크 양식에 지어진 듯 건물들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샤이 진다에서 바라본 비비하눔
다음으로 향한 곳은 티무르 제국의 3대 황제인 울루그벡이 지은 천문대로 향했다. 조선의 건국 시기쯤에 통치한 황제로 제위기간은 짧으나 천문학에 박식하여 천문대를 세우고 해와 달, 별들을 관찰했다고 하며 1년의 길이를 측정하였는데 현재와 거의 비슷하게 측정하였다고 한다.
천체 움직임을 관측하던 지하통로
울루그 벡 황제상
마지막 방문지인 구르 아미르 광장(Go'r Amir Maqbarasi)으로 향했다. 이곳은 티무르 제국의 초대 황제인 티무르의 무덤부터 3대 황제의 무덤까지 있는 곳으로 다양한 모자이크와 여러 가지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 질 녘의 모스크는 본래의 금장들에 더해져 황금빛을 품어내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티무르 제국이 몽골의 후손으로 지금의 우즈베키스탄뿐만 아니라 카스피해와 흑해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그 영역이 광활하였다. 오늘 둘러본 다른 모스크들보다 모자이크나 장식들이 가장 화려해 보였다.
돌아가는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 근처 카페에서 잠깐 쉬면서 몸도 데울 겸 차 한 잔을 하면서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따뜻한 차가 들어가자 몸도 마음도 편해졌다. 돌아오는 기차에는 아이들이 많이 타고 있어 다소 어수선했다. 앞자리의 얘기 엄마는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탔는데 갓난아이가 계속 울어 매우 힘들어 보였다. 큰 아이에게 한국 과자를 주자 과자를 조금 먹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과자를 우리 자리로 슬쩍 놔준다. 아이인데도 뭔가 받았다고 자기 것을 나눠준다. 먹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고맙다. 동생이 울어 엄마의 관심 밖이지만 혼자서 놀고 있는 게 대견하기도 했다. 다른 좌석의 아이에게 관심을 주자 우리에게 안기기도 한다. 기차칸의 정겸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예정시간 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지만 긴 여정의 하루를 잘 보내고 돌아와 다행으로 여기며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