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도 얘기했듯이 파리 체재 호텔에서 시내 나다니기가 번거로워 잘 나가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골프 라운드에 시간을 보냈다. 근데 이번 파리는 근처 자주 가던 골프장이 지역대회로 인하여 일반인 라운드를 받지 않아 뭘 하고 지내다 오지 하는 마음으로 파리를 가게 되었다. 다행히 오랜만에 파리 가는 후배도 있고 시내 가고 싶어 하는 후배도 있고 해서 함께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호텔 아침을 같이 먹고 택시 앱을 이용해 파리 시내로 가기로 했다. 5명이라 승용차는 안되고 밴을 불러 출발했는데, 처음 목적지는 몇 개월 후 보수공사로 인해 한 동안 볼 수 없을 것 같은 '조르주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로 정했다. 앱을 이용해 부른 택시 기사가 탑승하자마자 목적지까지 약 45분 정도가 소요될 거란다. 토요일이라 그나마 교통상황이 좋아 그 정도라고 한다.
시간을 빨리 보내는 것은 수다 만한 것이 없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특이한 건물이 눈앞에 들어온다. 수년 전에 와봤지만 날씨 좋을 때는 처음이라 느낌이 달랐다. 주용도가 현대미술관이라 전시가 여러 가지 있지만 우리는 건물을 보러 온 터라 내부로 들어가 야외 에스켈레이터를 이용해 가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퐁피두가 파리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뷰 맛집이다. 멀리 에펠탑(La Tour Eiffel)부터 오른쪽 시선을 돌리면 라데팡스(La Defense)와 몽마르트르(Montmartre)도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의 파리 시청(Hotel de Ville)을 따라가면 뒤편에 보수공사 중인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 성당도 보인다. 센느(Seine) 강은 건물들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철골 구조물로 되어 있는 퐁피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사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은 의자에 한 아가씨가 계속 앉아 있어 기다리고 있는데 눈치를 못 챘는지 계속해서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다.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왔다. 돌아가면서 사진도 찍어본다.
퐁피두에서 나와 요즘 유행하는 'Merci'라는 상점에 가 보자고 한다. 구글지도를 검색하니 걸어서 20여분 정도 예상된다. 마레(Le Marais) 지구 끝 편에 있는 것 같다. 주말에 날씨가 좋아서인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다. 중간에 경찰차들이 한꺼번에 여러 대가 지나가면서 길이 막히기도 하였다. Merci 가게는 큰 길가에서 약간 들어가야 보인다.
건물도 이쁘게 생겼다. Facade가 고풍스럽고 멋있다. 오른쪽에는 오래된 서적으로 벽면을 장식한 카페가 있고 주 출입문과 사이에는 빨간 Fiat가 시선을 끌면서 사진을 찍게 만들고 있다.
가게 안은 현지인들보다 관광객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한국어도 많이 들린다. 이곳의 시그니처 아이템인 에코백을 고르는 것도 쉽디 않다. 여러 가지 색상으로 하나만 고르려니 선택장애에 걸려버렸다. 후배들은 몇 개를 사면서도 이 색상도 갖고 싶고 저 색상도 갖고 싶다고 한다. 모두 다 사 버리라고 말은 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 결국 두세 개씩 골라서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섰다.
파리의 골목길은 건물이 높지 않아 하늘이 보여 서울 하늘과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근데 몇 블록 가지고 않았는데 후배 둘이 '아까 그 색상으로 하나 더 살까' 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낸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야 될 것 같아 다음 비행에 사라고 겨우 달래고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적당한 식당들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아까 올 때 길에서 봤던 식당들은 보이지 않았다. 10여분 이상 걷다가 이탈리안 식당이 눈에 들어와 5명 좌석이 가능한 지 물어보니 야외 좌석은 없고 안쪽만 있다고 한다. 바깥에서 밝은 햇살아래의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지만 배가 고픈지라 내부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피자와 파스타 두 종류 그리고 시저샐러드를 주문했다. 음식은 금방 준비되어 나왔는데 부족할 것 같아 라비올리를 하나 더 시켰다. 모두 배불리 먹으니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시계의 만보기는 벌써 만 보를 넘어서고 있었다.
방향을 센 강으로 잡고 걸어가는데, 주말 오후에 날씨가 좋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길거리가 꽉 찬 느낌이다. 강옆길에 이르러 시테(La Cite) 섬 방향으로 틀어 걷기 시작했다.
센 강의 명물인 거리중고 서점들이 늘어서 있다. 파리올림픽 기간 철거를 할 거라는 뉴스를 봤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나 보다. 오른쪽의 파리 시청에는 올림픽을 알리는 상징들로 장식되어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고 사진을 찍고 가라고 한다.
어제 상류에는 비가 내렸는지 센강은 강물이 불어나 강옆까지 물이 넘쳐흐르고 물도 흙탕물이다. 그래도 강옆 곳곳에 파리지안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듯하다.
강을 건너 시테섬 안으로 들어오니 공사 중인 노트르담 성당(Notre-Dame de Paris)을 보기 위해 좁은 길 사이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다. 성당 맞은편에는 스탠드를 설치해 공사 중인 성당의 파사드를 잘 볼 수 있게 했다.
센 강 남쪽을 따라 걷다가 카페인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카페에 앉았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다닥다닥 붙은 좌석에 겨우 앉아 커피를 한 잔씩 했다. 옆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어 불편했지만 곧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남자 두 명이 앉았는데 한 명은 표정이나 말투에서 상대 남자에게 꿀이 떨어진다. 아래로 보니 신발은 완전 여자들의 하이힐 스타일이다. 자유로움이 좋다. 커피로 충전하고 마지막 행선지로 향했다.
파리 오기 전 뉴스에서 본 하원의원 의사당(Assemblée Nationale - Palais Bourbon)에 설치된 2024년 파리올림픽 상징물을 보러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에서 잠시 쉬면서 다른 일행 두 명과 조우했다. 강 따라 조금 걸어가자 의사당 건물이 보이고 조형물들이 형형색색으로 신기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올림픽의 대표 종목들인데 그중 양궁은 한국을 대표하는 종목이란다. 그리고 양국만 한쪽 팔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패럴림픽을 상징하기도 한단다.
이제는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시내 올 때 사용했던 Bolt 앱으로 차량을 불렀는데 연결이 될 듯하다 취소되기를 반복하더니 결국에는 사단이 나 버렸다. 한참 떨어져 있던 차량이 갑자기 우리 근처에 있다고 나오는데 아무리 찾아도 차는 보이지 않고 운전사는 근처에서 기다린다고 문자가 온다. 전화를 하였지만 받지를 않는다. 잠시 후 자동 취소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위약금이 결제되어 버렸다. 황당했지만 나중에 해결할 일이다. 다른 택시앱인 FreeNow를 이용하기로 했다. 10여분 기다리면 오는 걸로 나와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해당 차량이 왔다. 인원이 7명이라 앞자리까지 이용해야 해 운전사의 짐들을 정리하고 겨우 앉을 수 있었다. 한 시간 이상 걸리며 길이 막혔다 뚫렸다 했지만 기다렸다 탑승한 택시라 감지덕지였다. 파리에서 택시 어플을 이용할 때는 이렇게 자동 취소되는 경우가 있으니 가능하면 카드 결제보다 현금 결제로 해 놓고 사용하는 게 좋을 듯하다.
오랜만에 후배들과 나들이 길이 수다와 웃음으로 가득해 즐거운 하루였다. 거리 곳곳이 아름다운 파리 시내를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걸어 보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