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었다.

엄마를 써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by 마지막꽃



...엄마가 죽었다.



엄마! 엄마가 죽은 지 벌써 15년 하고도 몇달이 더 지났어.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내가 엄마랑 함께 살았던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길어지려 해.

이른 아침 울린 전화벨.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2008년 시린 늦가을, 15년이 지나도 엄마가 죽은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아. 엄마가 죽은 날짜를 자꾸 잊어버려.

달력을 거슬러 열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믿고 싶지 않은 그 날을 잊고 싶은 걸까?



그래도 나, 엄마는 절대 잊지 않으려 편지를 쓰기로 했어.

보내지 못 할 글인걸 알지만,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또 쓸거야. 자꾸만 흐릿해지는 엄마 얼굴과 목소리를 기록하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릴것만 같아서.


엄마를 계속 사랑하기 위해.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하기 위해.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 위해.


아마 엄마가 죽기 전에는 내가 책을 즐겨 있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을거야. 지금 나 보면서 요놈 봐라~ 하며 기특해 하려나? 아! 엄마, 우리 우체국 옆으로 이사 갔을 때 엄마가 갑자기 세계논술문학전집을 사서 내 책장에 꽂아 놓은 거 기억나? 그게 '좀 있어 보였어.'

주황색과 카키빛이 도는 표지 였는데 내가 읽기 어려운 책이었어. 아마 중고생용이었을 텐데 나는 그 책을 다 읽어야만 하는 줄 알고 끙끙대며 읽는 척을 했거든?

초등생이었는데 그때 내가 읽은 책이, <노르웨이 숲>, <상실의 시대> 같은 류의 책이었어.

아마도 글자만 읽었을테지만 성인이 되어 그 책을 다시 만났을 때 왠지 모를 반가움이 컸어.


'좀 있어 보이는' 그 전집을 읽으며 나도 덩달아 있어 보이고 싶었을까?

그 책을 읽으면 엄마가 좋아 할 것 같았어. 좋아할 엄마를 상상하면 나도 좋았지.

많이 배우지 못한 엄마는 학력란을 쓸때 살짝 고민했었던 기억이 나. 무식해 보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무의식을 고스란히 내가 흡수 한 것은 아닐까?


“아빠는 사장님이까 좋은 옷 입어야 한다” 라는 엄마의 말과 아빠 옷은 백화점 가서 사고 엄마는 시장에서 사 입던 모습이 떠올라서 많이 슬프다.

엄마 나름의 아빠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표현 방식 이었을까? 그 당시엔 잘 몰랐는데 이젠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해.


그래도... 그래도 그러지 말지.

엄마도 좋은 거 사고, 좋은 거 먹고, 좋은 거 가득 누리지!! 엄마 나이 오십이 되어서야 처음 명품이란 걸 사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라.


그 옷은 여전히 새 옷 그대로 인데, 엄마는 없네.


주인이 사라진 그 옷과 내가 엄마에게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명품 가방을 엄마가 죽은지 49일만에 엄마를 따라 활활 태워 보냈어.

물건은 보냈지만 엄마는 아직도 보내지 못했어.


차마 정리하지 못했던 엄마의 몇가지 짐을 짊어지고 바다 건너 이사를 할 때도 나와 함께였어. 그 물건을 버리면 엄마를 버리는 것만 같아서 이고지고 살아왔어. 내가 사용하지도 못할 물건을 왜 정리 못하고 살았을까.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게 나의 애도 표현이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죽어버린 엄마에게 쓰는 이 편지 또한 무의미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렇게 라도 쓰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가 없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울컥 눈물이 차 올라.


참고 참던 처절함은 깊은 한숨으로 새어 나오고.

엄마 없이 살아가는 건 마음을 찢고 또 찢어.

엄마 없이 살아가는 건 쓸쓸함이 제 멋대로 번져 도저히 감당이 안 돼.


남은자들이 살아가는 건 이렇게나 힘이 드는 건가봐.


엄마도 어릴 때 외할아버지를 가슴에 품고 살았는데, 엄마의 서러움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네.

할아버지가 엄마 예뻐하셨다는 이야기가 얼핏 기억나.

엄마의 애칭, 우리 끝순이~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


누군가가 내게 엄마 나이를 물었을 때 내가 “서른일곱 살 이요” 라고 대답 한 게 떠올라. 지금 나보다 어렸던 엄마. 엄마가 올 해 몇 살인지 나이계산을 해야만 알 수가 있네. 만으로 예순일곱. 와... 살아계셨으면 이제 제법 할머니로 보였겠지? 나한테는 여전히 오십초반 건강하고 밝은 얼굴의 우리엄마.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물어 볼 껄. 어쩌면 엄마한테도 좋아하는 시나, 마음에 남는 문구 하나 있지 않았을까? 엄마, 아빠가 같이 죽어 버려서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 볼 곳도 들을 곳도 없어서 너무 속상해.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었다면 물어보고 함께 그리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왜 둘이 같은 날 죽어 버려서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냐고!


그래 알아. 엄마를 원망하면 안 된다는 걸.

엄마가 엄마삶에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내가 잘 알아. 하지만 원망감이 꿈틀거리는 내 감정도 좀 봐 줘.

이제 모른 척 덮어 버리기엔 내가 숨을 잘 쉴 수가 없어서 그래.

내 속에 뭐가 들어 앉았는지 엄마가 좀 봐 줘.


용기내어 만난 작가님이 나에게 ‘엄마를 써주세요’라고 하셨어. 작년 가을, 내가 책을 썼을 때 우리 엄마에겐 이기적인 시간이 없었다는게 느꼈지더라. 겨우 시장 보러 가서 쌀집아줌마랑 이야기 나누고 오던 시간이 엄마에겐 유일한 이기적인 시간이었을까? 우리 엄마가 30여년의 결혼생활 동안 오롯이 엄마만을 위한 시간이 없었다는게 슬퍼서 미칠 것 같아.



엄마,

내가 자주 편지 쓰며 엄마를 기억할게.


엄마,

내 글 속에선 이기적으로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게 되면 좋겠어.


어쩌면 난 엄마를 기억 할 거라고 해 놓고

이기적으로 내 마음을 지키려 하는 건지도 몰라.

솔직히 말하면 나를 지키기 위해 쓰는 거 맞아.


이렇게라도 써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