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멍게다.

오늘도 엄마를 기억할게.

by 마지막꽃



엄마안녕?


오늘 아침에는 근육통에 피로감이 몰려와서 애들 아침밥 차려주고, 등교 준비하는거 보다가 전기장판 켜서 누웠어. 애들은 시간 맞춰 각자 등교를 했고 한 시간 정도 누워 있었는데 내가 잠이 들었던가, 아니면 누워만 있었던건가?

몇시간 전 일도 기억이 안 난다.


운동도 가야 하고, 선약도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아.

누워만 있고 싶어.

"쉼이 필요하다." 라는 몸의 신호인지, 마음의 외침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만 가라앉게 되네. 그래도 약속을 파 하는건 마음이 더 불편해서 대강 씻고 나왔어. 15분정도 걸어서 약속 장소로 걸어갔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ㅅㅁ교수님께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는 되지 않았어. 나쁜 소식이 들린 이후로 통화 연결이 안 되고 있어. 걱정되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지금 엄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은 거라는 말이야!

그냥 아무 용건 없이 전화해서 목소리 듣고 싶은 사람.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싶은 거야.

볼 수 없는 사람을 보는 것, 들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게 욕심일까? 허무맹랑한 꿈일까?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일일까? 지금까지 너무 ‘쓸모’를 생각하며 살아온 거 같아. 쓸모있는 일을 해야 내가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 같은 생각에 사로 잡혀서 나를 갉아 먹는 것 같아.

내가 요즘 침잠해지는 이유가 ‘엄마의 역할’에 관한 거야. 엄마는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 가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엄마는' 집을 깨끗이 치우고, '엄마는' 정갈한 밥상을 뚝딱 차려내야 하고, '엄마는' 뭐든 척척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런 나의 신념들로 나의 삶을 힘들에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아. 고치려 해도 잘 안돼...

엄마! 엄마는 왜 나 어릴 때, 그 흔한 그림책 한 권 안 읽어줬어? 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요즘 좀 올라왔는데 이런 원망하는 마음을 표출하기가 어려워.

나쁜 딸이 될 것만 같아서,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서,

생각도 자유롭게 못하고 글이지만 쓰는 것도 머뭇거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


‘엄마’ 라는 자리가 이렇게나 어렵고 힘든거였어?


내 아이가 커 갈수록 조금씩 엄마가 더 크게 느껴져. 엄마는 엄마하기가 얼마나 좋았고, 또 얼마나 힘들었어? 나는 애들 유아기 때에는 내가 좀 괜찮은 엄마라고 자부했어.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 모습을 바라보며 심적 고통을 마주할 때 곁에서 나는 자책감을 크게 느끼고, 낮은 산도 큰 산으로 만들어 버리며 괴로워해.

아이가 힘들어서 울면 엄마 마음은 피 눈물이 흘러. 너무 자책해서 자꾸만 저 깊은 구멍이 속으로 나를 몰아넣고 있어. 엄마는 오빠가 사고 났을 때, 그 몇 년의 시간이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괴로웠을 것 같아. 나는 그때도 엄마에게 힘이 되어 준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 이렇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보면 나는 엄마의 불안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 같아. 미안해 엄마.

난 엄마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엄마의 부재에 '내가' 불편해지는 것만 불평하진 않았을까? 오빠의 오랜 입원기간 그리고 그로인한 재수 시절 엄마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할 많은 경험 앞에서, 지금은 비교적 낮은 산 앞에서도 이렇게 허우적거리는데...

마는 그 큰 산 앞에서 누구에게 의지하고 살았을까?


나는 엄마를 너무 모른다.

엄마가 죽고 나서 제일 괴로웠던 게 뭔지 알아?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 음식이 떠오르지 않아서야. 아빠가 좋아했던 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엄마가 과일 살 때나 과일을 깎으면서 “아빠는 수박, 단감을 좋아 한다” 말을 해줬다는 것.

정작 엄마는 “나는 뭘 좋아해”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어.

다행히 기억에 남는 건 아빠가 검은 봉다리에서 빨간 멍게를 꺼낸 날! 그날 엄마의 행복해 하던 표정이 내게 남아 있어서 나에게 멍게는 엄마야. 나도 멍게에 대한 추억이 있어. 그 전까진 멍게에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제주 살 때 애들없이 한서방이랑 둘이서만 용머리 해안에 놀러 갔을 때! 해녀 할망이 무심하게 툭툭 내려쳐 잘라준 멍게를 한 입 먹는 순간, 입안에서 사르르 녹더라.
물론 챙겨야 할 아이들 없이 한서방과 단둘이 가뿐한 발걸음이라 무얼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그날의 멍게 맛은 특별했어. 아직 그 맛과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이후로 유독 멍게를 자주 먹는데 엄마가 그리워서 무의식중에 자꾸 찾은 걸까?

엄마가 그리워서 나도 모르게 그 음식을 찾아 먹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오네. 나는 몰랐는데 내 몸은 엄마가 사무치게 보고 싶다고 외쳤다는 걸 인지하니 내가 너무 가여워.



가슴에 묻은 그리움이 외로움이 되고,

그 외로움은 나를 갉아 먹는 것 같아.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이 글쓰기야.

전화를 할 수 없으니 이렇게 편지를 써.

그리고 그동안 참았던 눈물도 이렇게 흘려보낼거야.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엄마에 대한 사랑표현이 이것 밖에 없어. 아니, 이렇게라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글을 쓰면서 매일 울다가 두통에 힘들어 할지라도 계속 쓸 거야. 엄마 생각하면서.

그리고 우는 것을 겁내지 않을 거야.


잃어버린,

잊어버린,

묻어버린,

그 아픔을 꺼내어 다시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알지만 이 시간이 얼마나 값진 시간인지 또 너무 잘 알아서...

그래도, 나 해 볼게.

엄청 용감한 딸로 잘 키워났네 우리엄마? 용감하고 단단한 딸, 엄마가 만든 걸까, 내가 스스로 된 걸까?


...내 딸도 나처럼 잘 크겠지? 엄마 딸이 이렇게 잘 크고 있는 것처럼, 내 딸도 잘 크겠지? 내가 무얼 잘 못 해서 자식이 잘 못 될까봐 너무 불안했지만 이젠 내가 가야 할 길이 점점 선명해 지는 것 같아.


“내가 잘 살면 된다는 걸.”



매일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뿌리 뽑히지 않으려 흔들린다는 것을 믿어. 그리고 내 아픔이 조금 덜 고통스러운 건 엄마가 죽었지만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믿기 시작하면서부터야. 우린 비록 몸은 만날 수 없지만 내가 잊지 않는 다면, 우린 늘 함께 하는 거야.


불쌍한 우리 엄마, 이 좋은 세상 더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어버려 너무 불쌍한 우리엄마. 엄마가 죽고 싶었는지, 살고 싶었는지 나는 잘 몰라. 이기적으로 나는 내가 살아야 했기에 나 그동난 너무 아팠어.

내가 아픈 건 잘 살고 싶어서야. 나, 정말 잘 살고 싶어.

난 힘들다고 죽어버리지 않을 거야.

절대 뿌리 뽑히지 않을 거야.

엄마가 잘 살고 싶었다면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인생의 지혜를 가졌더라면 우린 지금 어떤 모습일까 라는 아쉬움이 있다는 걸 고백해.

그런데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해. 엄마의 삶을 다시금 바라보면 엄마는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 했을 거야.

엄마를 비난 하는 게 아니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어.

이런 감정들이 올라올 때 마다 막아섰지만 이젠 더는 그러지 않을래. 그저 내 감정에 솔직해 지도록 연습할거야. 엄마를 탓 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죄스럽게 생각하는 내 마음이 너무 안쓰러워. 그저 그 어떤 마음이 피어올라도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니 엄마, 혹여나 서운해 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 딸이 조금 더 단단해지려 애쓰는 모습을 응원해줘. 엄마가 없어져 버려서 한동안 꿈을 잃기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쓰러져 주져 앉아 있지만 않은 건 엄마가 보고 있을 거라 믿기에.

하루를,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그저 묵묵히 살았어. 괴로워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렸고, 그러면서 내 안의 불안도 점점 커졌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엄마가 죽어서 사라진 것도 많지만 엄마가 죽었기에 새롭게 태어난 것도 많아. 인생이 꼭 비극만 펼쳐지란 법은 없나봐. 난 그래서 “인생이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을 믿지 않아.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깊이 바라보면 기쁘고 감사한 일은 꼭 있어.

안하무인이 될지도 몰랐던 나는 엄마가 죽고 타인의 아픔도 더 잘 느끼게 되었고, 겸손함도 익혔으니
엄마,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내 인생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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