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라고?
엄마안녕!
오랜만에 쓴다. 요즘 조금 무기력한가 아니면 적당히 여유로운 일상을 무기력이라고 느끼는 건지, 자책감을 느낀 시간이 잦았던 것 같아. 어제 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아침 챙겨주고, 남편 출장 배웅을 하고 들어와서 하루 종일 딩굴 거렸어. 그래서 밤에 스물스물 자책감이 휘몰아치는 중에 다행히 내가 '한 일'들이 떠오르는 거야. 어제는 설거지도 했고 세탁기도 두 번이나 돌리고, 빨래까지 잘 개어 정리했어. 부끄럽지만 평소에 이런 집안일이 버거워 미뤄뒀다가 하거든. 뭐든 잘 하고 싶어 하고 욕심 많은 내가 살림을 잘 하고 싶은 욕심은 없나봐.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그렇게 살아.
그런데 또 내가 뭘 했는 줄 알아?
생애 첫 완두콩을 사서 아이들이랑 껍질을 깠어. 잘했지? 나로썬 아주 놀라워. 콩껍질을 까면서 엄마가 또 떠올랐어. 엄마가 반찬 만들 때 내가 자주 도왔잖아.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시켰었지. 깻잎에 양념장 바르는 거, 콩나물 다듬는 거, 김장하는 거, 그 중에서 깻잎이랑 콩나무 반찬을 제일 자주 했었는지 그 기억이 많이 나네.
어린 맘에 귀찮아서 하기 싫기도 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그 때 엄마랑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엄마를 거들었던 기억이 참 따뜻해.
아마도 엄마가 있었으면 지금 내 삶이 뭔가가 조금은 다르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싶어. 엄마는 늘 깔끔했고 정갈한 밥상을 차렸지. 손맛도 좋고, 바지런 했어. 인정해 우리엄마! 엄마로써, 아내로써, 주부로써 완벽하려 무진 애를 쓰며 살아낸 엄마의 삶의 방식이었을거야.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더 원하고 또 필요해. 처음부터 그랬던 거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엄마가 된 나의 삶은 이러해. 지금처럼 카페에 앉아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나’ 다운 것 같아. 행복하고 만족스러워 지금.
힘든 감정을 마주한 후에 느낄 수 있는 만족감 인 것 같아. 지금 내 눈앞에 하얀 갈매기가 날아갔어.
아주 자유롭게.
오전에 상담을 받고 애쓴 나를 위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와 있어.
몇 해 전 심리 상담이란 걸 받았었는데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지쳤었거든. 마지막 단계에서 명쾌하지 않은 채 마무리를 했었어. 그 이후엔 스스로 마음챙김 한답시고 심리학 책 읽고, 글쓰고 명상하고 스스로 마음 돌보며 살아왔는데 최근 양육 고민으로 병원 상담을 두세번 받았어. 그 힘듦이 다름 아닌 '내 안에서' 나오는 걸 깨닫고 아직 좀 더 마음공부가 남아 있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
강원도와 제주 바다와 다르게 서쪽 바다는 산으로 둘러 쌓여있네.
외딴 섬 같기도 또 쭉 이어진 육지 같기도... 나무가 우거진 산과 나 사이에 바다가 있어. 호수 같기도 하고 강 같기도 한 바닷가 앞 조금 큰 카페에 들어와 혼밥을 먹고 글을 써.
아침 일찍 나올 때는 내 신세가 처량해 눈물이 나왔지만, 몇시간 지난 지금은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감사하고, 행복하고, 내 선택이 만족스러워.
단, 오늘 아이들 재량휴업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데 남겨 놓고 나온 게 마음에 걸려. 내가 지금 집에 같이 있었더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 했을 거란 걸 알기에 자책은 안 하려 하는데 마음은 자꾸 쓰여. 물리적 거리만으로도 나는 힘이 들어.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걸 믿는 걸까?
머리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음은 쓰려. 난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자꾸 곁에 있어야만 할 거 같은 건 내가 가진 트라우마 같은 거겠지?
‘트라우마’ 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조금만 잘 못 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혹여나 내 행동이나 말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 생기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 하는게 습관이 되어 버렸어. 정확한 뜻을 모르면서 요즘 우리가 남발하는 단어이기도 해서 이 참에 트라우마 뜻을 좀 찾아 봤어.
정신적 상처를 psychological trauma, 육체적 상처를 physical trauma라고 부른다. 큰 상처를 뜻하는 라틴어 트라우마(Trauma)가 말뿌리이다.(라틴어 수업/한동일 지음/흐름출판). 원래는 상처라는 뜻의 고전 그리스어 τραῦμα(트라우마)에서 유래하였다.
“마음의 상처” 과거에 경험했던 공포와 같은 순간이 발생 했을 때 당시의 감정을 느끼면서 심리적 불안을 겪는 증상으로 정신적 외상의 의미가 크다.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줄임말. 상술했듯이 보통 트라우마 라고 하면 대부분 이쪽을 가리킨다.
흔히 트라우마라 하면 밑에 나오는 PTSD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PTSD만큼은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는 특정 경험과 그에 동반되는 증상(부끄러움, 이불킥 등)들도 작은 트라우마(small trauma)라 하여 트라우마의 범주에 든다. 알프레트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리적 불안과 그로 인한 문제 행동의 원인은 과거의 사건이나 감정이 아닌 현재의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목적에 있다고 설명한다. 트라우마 스위치/트리거 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해당 인물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일깨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특정한 상황이나 자극을 말한다. 그 상황이나 자극에 마치 역린이나 약점처럼 비정상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여 폭주한다든가 격분하거나 소침해진다든가 두려움에 떤다든가 한다.
외상이 과거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충격적인 기억이 떠오르고 경험했던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심한경우 통제력을 잃는다. 대개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건과 비슷한 상황이 닥치자 말 그대로 뭐 하나 제대로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관련 속담으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는 말이 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적절하게 치료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발전하게 되며 적절하게 심리 치료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나무위키>
지금 나는 내가 심리상담을 받아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말 하고 싶어서 이렇게 증명 하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내 트라우마가 부모에게서 온 것이라 생각하기 싫지만, 이제 와 부모 탓을 하고 싶어 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내 무의식엔 부모를 향한 미움과 원망이 있다는 걸 아프지만 인정 하게 되었어.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그리고 미워하고 원망해야 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지금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파.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마음이 후련 한 거 같기도 해. 선생님께서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신념을 흘려보내야만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나의 팔랑 귀가 이럴 땐 도움이 되는군. 오늘 내 나름 최선을 다 해서 미워하고 또 미워했어. 있는 힘껏 미워하고 또 미워하고 싶은데 언젠가는 될 거라 믿어. 뭔가 아직 나를 붙잡고 있는 감정이 있는데 그걸 찾기가 어려워. 하지만 분명 나는 좋아졌어. 그게 느껴져서 내가 너무 기특하고 오늘 이 시간이 참 감사해.
바다를 보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상담의 효과인가? 지금 내 마음이 굉장히 넓어진 느낌이야. 물론 또 큰 산이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면 난 또 민감하게 반응하고 불안에 떨게 되겠지만 하지만 이 전처럼 두렵지는 않아. 내 감정을 예측할 수 있게 되어서 컨트롤이 되는 것 같아.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떤 삶을 바라는 걸까?
엄마, 나는 ‘잘 살 거야!’ 어쩌면 이런, ‘잘’ 살고 싶다,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걸까? 그저 하루하루 살아지도록 그냥 두면 되는 건데, “난, 왜 이토록 ‘잘’ 살아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라는 내가 만든 틀 안에 날 가둬 놓는 걸까? 인정하기 괴롭지만, 나는 엄마가 잘 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 하는 걸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으로 다름 아닌 내가 하는 내 생각이 나를 괴롭혀.
이제 그만 하고 싶어. 딱 잘라 버리고 싶어. 그렇게 할 거야. 지금 나의 이런 감정을 인정하면 내 존재가 하찮아 질것 만 같아서 겁이 나. 나는 부모와의 경계가 없는 채 혼자가 되어 버렸나봐. 그래서 지금 부모가 되어 경계를 지켜야 하는 내 상황이 버거운 것 같아. 적당한 거리라는 걸 지켜야만 한다는 걸. 사랑하는 사이 일수록 더더욱 경계를 잘 지켜야 우리가 건강해 진다는 걸.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자꾸만 그 경계를 넘나들어.
하지만 나, 할 수 있어. 적당한 거리를 지켜가며 나를 잘 지킬 거야.
두고 봐 엄마,
미안하지만 나는 절대 엄마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야.
두고 봐 엄마,
나는 자유롭게 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