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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핀란디아 - 꺾기지 않는 저항의 노래

이제야 듣는 클래식 17

by 곰탱구리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 작품번호 26》(Finlandia), 장엄함과 웅장함이 뒤섞여 혈관의 뜨거움이 가슴으로 전달되는 곡


핀란디아는 핀란드의 작곡가인 장 시벨리우스가 작곡한 교향시로, 초판은 1899년에 작곡되었으며 수정판은 1900년에 쓰였다. 핀란디아는 1899년 러시아 제국의 언론 검열에 비밀스럽게 저항하는 언론사의 기념행사에서 작곡된 일곱 작품 중 마지막으로 쓰였다. 이 일곱 개의 작품 하나하나는 핀란드 역사의 몇몇 에피소드를 극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일반적인 연주 시간은 대략 7분 30초에서 9분가량이다.


시벨리우스는 1865년 12월에 태어난 핀란드의 작곡가이다. 음악 활동을 위해 본명인 요한(Johan) 대신 프랑스식 예명 장(Jean)을 사용했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리의 시처럼 핀란드의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여겨진다. 핀란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핀란드 최대의 작곡가일 뿐 아니라,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세계적인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은 현대 음악풍은 아니지만, 애조를 담은 북유럽의 음악다운 특색을 가지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몽상가에 멋 내길 좋아하는 게으름뱅이로 불리었다고 한다. 그랬던 갑자기 핀란드의 영웅이자 국민음악가로 등극한다. 사실 그는 평생 유유자적하게 빈둥거리는 한량으로 살기를 원했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즐기던 그가 친구들과 함께 베를린 필이 연주하는 한 교향곡을 들으러 갔다가 머리를 세게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 그 곡은 핀란드 출신의 카야누스가 조국의 위대한 전승서사시 『칼레발라』를 토대로 작곡한 〈아이노 교향곡〉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큰 소리로 환호하는 청중들 사이에서 시벨리우스는 더 이상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핀란드 자치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음악 유학을 온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게 여겨졌다고 한다. 그날 그의 마음속에 일어난 작은 변화는 그전까지 유학생활의 자유를 만끽하던 시벨리우스의 나태한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을 뿐 아니라 훗날 세계적으로 알려진 〈핀란디아〉와 핀란드 국가를 만들게 하였다.


교향시(symphonic poem 또는 tone poem)는 단악장 교향악 악곡으로, 음악외적인 이야기나 묘사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소재는 시, 소설이나 이야기, 회화 등 다양하다. 이 낱말은 프란츠 리스트가 자신의 13개 단악장 교향악곡에 어쩌다가 붙인 이름에서 처음 쓰였다. 이 곡들은 고전적인 의미의 순수한 교향곡이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이 곡들은 신화와 낭만주의 문학, 당대사, 환상 이야기의 주제를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추상이 아닌 "표제"가 있는 음악인 것이다. 이런 형태는 음악에서 문학, 회화, 극의 요소를 수용하게 된 낭만주의 음악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19세기 후반기에 교향시는 표제 음악의 중요한 양식으로 자리 잡는다.


교향시는 연주회용 서곡과 마찬가지로 단일하거나, (바로크 음악보다는 낭만주의 음악의 의미에서) 모음곡의 일부일 수도 있다. 가령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1895년)는 시벨리우스의 《레민카이넨 모음곡》(Lemminkäinen Suite)의 일부이다. 교향시는 서로 관련된 작품을 모은 곡들의 일부인 경우도 있는데,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여섯 작품을 모은 《나의 조국》 중 〈블타바〉가 그 예이다.


당시 핀란드는 핀란드 대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근대적인 민족주의가 형성되었으며 이는 종종 러시아 제국의 탄압을 받았다. 이때 핀란드의 카를로 베르그봄(Kaarlo Bergbom)은 총 6막으로 이루어진 핀란드 역사 연극을 만들고 그 반주음악을 시벨리우스에게 의뢰했다. 이 반주음악을 붙인 연극은 1899년에 초연되었고, 초연 이후 최종막인 '핀란드는 각성한다'(Suomi herää) 부분의 반주음악만 따서 개정해 발표된 곡이 바로 이 곡 '핀란디아'이다. 러시아 제국은 핀란드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 곡의 연주를 금지하였고, 이에 따라 핀란디아로써의 초연은 190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그 뒤로도 핀란드 본토에서는 핀란디아의 공연이 오랫동안 금지되었기에 '핀란드에 봄이 찾아왔을 때의 행복한 기분' 따위의 이상한 제목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곡은 총 3악장을 구성되어 있으며 끊지 않고 연속적으로 연주한다.

I악장 : Andante Sostenuto 암울한 분위기의 서주부이다. 러시아의 압제로부터 고통받는 핀란드 민중을 묘사한다.

II악장 : Allegro Moderato 첨부 동영상 기준 3분 7초부터 시작한다. 템포가 빨라지며, 이후 암울한 상황이지만 희망찬 행진곡 풍의 선율이 등장하는데, 이는 러시아의 압제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다.

III악장 : Allegro 첨부 동영상 기준 5분 32초부터 시작한다. 러시아의 압제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일어난 핀란드의 희망찬 앞날을 묘사한다. 중간에 2부에서 등장한 압제에 대한 저항이 회상되어,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처음 이 곡의 배경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들었을 때는 그저 웅장하고 장엄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첫 도입 부분이 영화 죠스의 시그니처 음악으로 유명한 드보르작의 '신세계로의 교향곡 4악장' 혹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다가오는 듯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뒤섞여 가슴을 조여 오는 듯한 관악기와 타악기의 두근거림이 이러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켜 준다. 느리고 암울하지만 끊임없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선율에서 실낱같은 간절함이 느껴진다. 3분이 지나가며 트럼펫의 고음과 팀바니의 힘찬 두들김이 어우러져 암울함을 걷어내고 거침없는 전진을 위한 민중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6분쯤이 되면 부드럽고 안정적인 선율로 압제에 대한 이겨냄과 당당하게 일어섰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다시 앞을 향해,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가는 힘찬 행진으로 곡의 절정을 장식하고 있다. 이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차이코프스키를 느꼈다. 압제를 넘어 지구를 뛰어넘어 신세계의 우주로 향하는 거침없는 발걸음.


이 곡의 배경을 알고 듣게 되니 그냥 들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1987이 떠 올랐다. 타국의 압제에 항거한 것은 아니지만 독재와 불의에 항거해 싸웠던 민중의 타오르는 열망과 치열했던 투쟁의 모습들! 그 당시 나는 대학 1년 학년이었다. 고등학교 3년에 더하여 1년이란 세월을 재수까지 해서 들어간 대학은 결코 지식의 상아탑이 아니었다. 매쾌한 냄새가 진하게 배어있는 교정, 여기저기 찢어져 날리는 대자보, 보기 싫게 검게 타버린 화염병의 흔적, 지하철 입구부터 막고 서 있는 전경들의 매서운 눈초리.....


낭만은 죽어서 시체로 뒹굴고 있었다. '고작 이런 것이 대학의 모습인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고등학교 3년을 홀라당 쏟아붓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을 재수까지 해서 겨우 도착한 대학의 참모습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대학만 가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좋은 대학만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배신감 마저 들었다. 물론 취업을 위한 스펙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그 당시 내가 선망하던 대학의 모습과는 너무도 차이가 많았다. 고등학교, 미성년자, 청소년 이러한 테두리에 갇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아 모르고 지나가야 했던 우리의 현실이 눈물 나게 부끄러웠다. 그래서 모두와 같이 나도 거리로 나섰고 돌을 던지며,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였다.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더 큰 폭력 앞에서 우리의 저항은 자기 방어의 최소 몸짓에 불과하였기 때문이었다.


6월 9일 밤 10시. 신촌역으로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때문이 아니다. 정권에 대하여 욕을 잔뜩 써 놓은 전공 노트 때문도 아니다. 책가방 바닥에 최대한 꼬깆꼬깆 접어 숨겨놓은 유인물 때문이었다. 지금은 불심검문이 위법이다 뭐다 해서 못하게 되어있지만 그 당시 그 야만의 시대에는 속된 말로 여학생 치마까지도 불시에 들쳐볼 수 있는 암흑의 시대였기에 불심검문 정도는 일상다반사의 일이었다. 내 가방 속에 들어있는 유인물은 내일 시위 때 종로에서 사용할 유인물이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돌과 글' 중 가장 강력한 공격 도구인 글이었다.


저 멀리 전경들이 보인다. 내 귓가에 핀란디아의 1악장이 서서히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음습하고 악의에 찬 무엇인가가 등 뒤에서 내게로 다가온다. 저음의 깊고 우울한 음악들이 밤의 어두음을 배경 삼아 나의 등 뒤에 자리 잡고 나를 내려다본다. 내 작은 마음이 조금씩 공포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색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전쟁이었다. 적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당당히 걸어갔다. 나를 째려보는 눈초리들. 적의 한가운데를 유유히 걸어간다. 마음속은 두근거림과 떨림으로 터질 듯이 요동치지만 그 느낌을 결코 외부로 노출시킬 수 없었다. 나의 약한 마음을 눈치챌까 봐... 기어코 그들이 나을 불심검문 한다. 내 책가방을 열라고 다그치는 전경의 목소리. 그러나 기죽지 마라. 그들은 결코 나의 가방 속에서 유인물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손 끝이 떨리고 있었고 내 가방을 이리저리 뒤져보던 전경은 가만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떨리는 내 눈동자. 전경의 손은 깊숙이 내 가방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안된다. 가방 아래쪽에 숨겨놓은 유인물이 발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긴장되어 가방을 빼앗아 도망쳐야 할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끌려가야 할지를 두고 수 없이 갈등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전경의 손은 더 깊숙이 들어갔고 유인물이 손에 닿고도 남을 깊이에 도달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주변에는 전경차가 3대나 와 있었고 야참을 먹는 시간이라 그런지 모두 나와서 길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방을 빼앗아 도망가는 것은 007 제임스 본드라도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되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서 가라고 눈짓을 보냈고 친구들은 그런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지하철 역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다 포기하고 끌려갈 것을 각오한 순간 그 전경은 빈 손을 빼내서 내게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딱딱한 말과는 다르게 나를 바라보는 그 전경의 눈은 매우 부드러웠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얼른 가라는 그의 눈빛에 나는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비록 전경으로 차출되어 어쩔 수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마음은 나와 같은 대한민국의 청년이었다. 이때 핀란디아의 2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가 귓가에 서서히 울려 퍼졌다. 암울한 상황에서도 서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국가를 위해 싸웠던 그 전경의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였다.


무교동 뒷골목에서 친구들과 새벽이슬을 맞으며 숨 죽여 기다린 나와 친구들. 비록 한숨도 못 자고 아침도 못 먹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골목 저 골목 경찰들의 눈을 피해 쫓겨 다니며 집회의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3악장이 트럼펫과 드럼, 티파니와 심벌즈의 강력한 파열음을 타고 골목골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율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호가 되어, 적의 심장부를 꿰뚫는 강력한 창이 되어 세상에 울려 퍼졌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부패와 악의 찬 구덩이에서 스스로를 건져내기 위한 필살의 주문이 서울 도심을 꿰뚫고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세상에 외쳐졌다. 우리는 최루탄과 백골단의 폭력을 피해 하루 종일 외치고 또 외쳤다.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시간, 19일 만에 우리는 결국 불의에 이기고야 말았다. 6.29 선언이라 불리는 민주화 선언까지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다치고 잡혀가고 뒹굴었건가? 나는 내가 역사의 한 현장에 서 있을 수 있었음에 너무 감사하고 있으며 38년이 지난 지금에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되고 있다. 러시의 압제에 독립을 갈구하던 핀란드인의 마음이나 군부 독재의 압제에서 민주화를 갈구하던 우리 국민들의 마음은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곡은 우리 모두에게 국가와 민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어수선해진 오늘날, 고문으로 죽었던 고 박종철 군과 최루탄 직격에 유명을 달리했던 우리의 친구 고 이한열이 생각나는 하루이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을까? 왜 우리는 그리도 치열하게 투쟁했을까? 5천 년의 역사 속에 민중의 항쟁의식은 늘 국가의 위기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정의를 쟁취해 왔다. 근래에 있었던 두 번의 탄핵까지 우리 민족의 저항 의식은 DNA속에 깊숙이 숨 쉬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피 속을 흐르는 저항의식을 강하게 자극하는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들으며 그날 광화문 광장에서의 함성 속으로 달려가 보고 싶다.



https://youtu.be/xobcz0Gy05g 시벨리우스핀란디아 - 카라얀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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