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두고 되새겨보는 인생
10살 이전에 내 가장 큰 고민은 '어떡하면 형들 노는데 같이 껴서 놀 수 있을까'였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삼시세끼 밥은 먹을 수 있었고 겨울이면 숨 막힐 만큼 두꺼운 솜이불이었지만 황소바람처럼 휘몰아치는 방안의 웃풍에도 그나마 춥지 않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니 고민은 오직 하나 '어떻게 잘 놀 것인가'였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특별히 놀 수 있는 곳도 놀 수 있는 장난감도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사과 궤짝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시답지 않은 나무칼 하나로도 반 전체 아이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우리들에게 가장 큰 장난감은 친구였다. 그저 몸으로 부딪치며 하는 놀이가 대부분이었기에 같이 놀 사람들 즉 놀이 동료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의미였다.
10살이 넘어서 사춘기를 겪으면서 가장 큰 고민은 '나는 왜 이따위로 생겨났을까'로 변했다. 14세쯤 나에게도 사춘기라는 것이 찾아왔다. 내게 사춘기가 왔다는 것을 가장 처음 알려준 것은 불행하게도 얼굴에 난 커다란 여드름과 머릿속에 자리 잡은 지루성 습진이었다. 아무리 짜 내도 여드름은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마치 불사신처럼 얼굴 전체를 돌아가며 아름답게(?) 피어났다. 붉게 상기된 분화구 위에 하얗게 서려있는 노오란 고름덩어리... 정말 극혐이었다. 머리는 더 심각했다. 그 당시 중학교는 입학하면 소위 빡빡이라고 부르는 짧은 스타일의 머리로 잘라야 했다. 특히 위생 개념이 매우 부족했던 탓에 이발소에서 쓰는 '바리깡'이라 불리는 기계를 거의 소독하는 경우가 없었고 이 사람 저 사람 공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병이 옮기도 하였다. 역시나 중 1 때 바리깡에서 이름 모를 피부병이 옮게 되었다. 70~80년도에 피부병은 사실 병으로도 취급받지 못했다. 그저 하나의 증상으로 생각하고 주로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고 하였다. 아니면 시간이 지나가면 고쳐질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래다 보니 치료 부진으로 그것이 지루성 습진이라는 불치병으로 머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한참 외모가 신경 쓰이는 나이에 얼굴에는 여드름, 머리에는 지루성 습진까지. 솔직히 살기 싫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하는 고민은 삶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20대 초반의 최대 고민은 '왜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할까?'였다. 많은 사람들이 캠퍼스 CC가 되어 대학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낭만의 최고봉을 즐기고 사는데 나는 왜 늘 차이고 엇나가고 홀로 지내야 했을까? 물론 연애를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달달한 시간들 보다는 쓰고 아프고 슬픈 고난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여행도 많이 다녔고 하루 종일 만화방에서 헛되게 보낸 시간도 무척 많았다. 그래도 얻은 것이 있다면 그 공허함을 메꾸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려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다르게 개가식 도서관이어서 책을 빌리기가 매우 편했다. 더군다나 전철로 통학하는데 보통 편도 1시간 반이상 걸리다 보니 책 읽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매주 5권 정도의 책을 읽으면서 거기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더 큰 슬픈 감정에 휘말리기도 하며 나의 젊은 날을 소모했다.
20대 후반부터 50대 까지는 모든 고민이 '돈' 이였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모을 수 있을까?' 회사에서 죽어라 버티고 빨리 진급을 하려던 이유도 '돈'이었고 몸이 축 늘어지게 새벽까지 야근하면서도 다시 일어나 좀비처럼 축 늘어진 몸으로 출근한 이유도 모두 '돈' 이였다. 돈은 목표였고 이유는 가족이었다. 명품을 척척 사주지는 못했지만 필수품을 돈이 없어 사주지 못하는 그런 불행을 가족들이 겪게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고 비싼 것을 사주지는 못해도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욕구를 어느 정도 만족시켰었다. 그래서 내 고민은 늘 돈이었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직장인이 직장생활을 30년 이상 유지해도 아이들 두 명 대학까지 보내고 나면 아파트 하나, 자동차 하나 그리고 퇴직금을 비롯한 약간의 현금 정도만 수중에 남아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의 좀 비싼 아파트에서 사는 경우 은행 빚이 좀 있을 것이고 나처럼 수도권이라도 경기도에 사는 경우 빚은 다행히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살면서 아프기도 하고 사고도 겪고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주된 관심은 '돈'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50대 후반이 되었고 쓸모가 없어지자 권고(?)라는 회사의 신사다운 방식에 감사의 인사를 꾸벅 한번 하고 빈 몸으로 집을 향해 차를 몰았다. 중간에 한 2년 중소기업에 들어가 일도 해보고 헤드헌터라는 프리랜서 일도 몇 개월 해보았다. 그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든 일을 다 때려치우고 백수가 되었다. 이제 주변에 아무런 사회적 보호막도 없는 자연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현재는 백수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퇴직 후 찾아오는 무력감이 내게는 오지 않았다. 워낙 좋아하는 취미가 많다 보니 무료할 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독서는 물론 글 쓴 는 것도 좋아한다. 운동은 싫어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골프, 당구, 트레킹, 등산 등등 다양하게 좋아한다. 거기에 비록 고전 게임이기는 하지만 PC게임도 좋아한다. 또 기타도 조금 치고 노래 부르거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은 물론 가장 좋아하는 것 중에 하나이고. 사실 하루 24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렇게 한량처럼 놀다 보니 문득 고민이 생겼다. 60살에 가까워지니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죽을 것이냐?'라는 것이 고민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음은 모두에게 결코 평등하지 않다. 어떤 이는 평온한 미소로, 어떤 이는 극심한 고통으로, 어떤 이는 막막한 우울감으로 맞이하게 된다. 물론 죽음 자체가 달가울 리는 없다. 그리 반가운 친구는 아니다 보니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맞이할 것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으로 도망 다니다 뒷덜미를 잡혀 악다구니를 쓸 것인지는 많은 차이가 있다. 나는 그리 아름다운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담담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내게 남은 여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야 죽음이란 놈이 나를 찾을 때 그저 씁쓸히 웃으며 담담히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은 삶에 대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주변의 뛰어난 분들이 은퇴에 대하여 혹은 여생에 대하여 쓴 책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있다. 몇몇 권의 책을 읽어보았고 아주 좋은 지식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단지 머릿속에서 둥그스름하게 소설처럼 생각해 보는 계획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한 계획을 세워보기로 하였다. 많이 가진 부자로 살 수는 없지만 부족하지 않은 현명한 평민으로는 살고 싶다. 그래서 혼자서 구체적인 은퇴계획을 세워보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