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꽁알꽁알 은퇴설계 2 - 은퇴설계의 필요성

은퇴설계를 하는 이유와 그 필요성

by 곰탱구리

은퇴 설계 왜 필요할까?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서 그저 아이들 배라도 굶주리지 않게 해 주기 위하여 우리 부모님들께서는 살아오신 세월은 참으로 눈물겹다. 아버지는 충청도 분이시다. 전쟁을 직접 몸으로 겪으신 분이시다. 인천 상륙 작전 때 인천에서 살고 계셨기에 맥아더 장군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엄청난 함포에 불바다가 되어버린 월미도를 직접 눈으로 보셨다고 하셨다.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는 과수원에서 싸게 사온 사과를 북한군에게 팔아서 목숨을 연명하셨고 미군이 진주했을 때는 미군에게 과일을 팔기도 하고 "기브미어 초코렛또"를 외치며 트럭 뒤를 쫓아가기도 하셨다. 어머니는 경상도 분이시다. 먹을 것 없는 경주를 떠나 산업복구가 한창인 인천에 취직을 하려고 형제들과 올라오셨다. 어찌어찌하다 충청도와 경상도 사람이 타향인 인천에서 만나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유원지에서 사진을 찍으셨다. 지금 MZ세대 사람들에게 출장 사진사라는 직업은 매우 생소한 직업일 수도 있다. 70년대 초까지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개인은 거의 없었다. 돈 많은 부자들이나 일본의 후지 혹은 캐논 그런 회사의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유원지나 관광지에는 출장 사진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항상 상주하였다. 카메라 한대를 목에 걸고 놀러 온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하여 집으로 보내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었다. 아버지는 맥아더 동상으로 유명한 인천의 자유공원(당시에는 유원지가 거의 없어서 인천에서 유명한 유원지로 인정받았다)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셨다.


아버지는 술을 매우 좋아하셨다. 술꾼은 처음 만나는 사람도 친구였고 술자리에서는 언제나 두주불사셨다. 그래서일까? 재테크에는 정말 소질이 없으셨다. 당시 출장 사진사라는 직업이 아주 전도유망한 직업은 아니었다. 돈도 엄청나게 벌 수 있는 자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겨우 강소기업 급여 정도의 수익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어머니께서 재테크에 수완이 있으셨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공원으로 출사가시는 아버지를 붙잡고 그동안 저축한 돈과 일부 은행에서 돈을 빌려 점포 임대를 제의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여성의 발언권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던 시대라 아버지는 주저하셨지만 점포에 오는 손님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당신이 도맡아 하시겠다는 어머님의 유혹에 선뜻 넘어가 버리셨다. 아마도 술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사항도 한몫을 한 것 같았다. 서로 각자의 계산기를 두드려 보시고는 흔쾌히 합의를 하셨고 그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물론 초등학생인 나까지도 가게에서 무급으로 일을 강요당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머니는 1층의 작은 건물을 샀고 1983년 인천에서 개최된 전국체전 때 인천시에서 저리 융자로 시행한 주택개선 사업에 일조하여 2층으로 증축하였다. 그 집은 지금까지도 두 분의 노후 자금의 핵심이 되고 있다. 건물의 소재가 인천의 제물포라는 번화하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매가가 그리 높은 곳도 아니고 임대료 또한 높지도 않다. 그러나 나의 소년기와 청년기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추억의 장소로, 우리 자식들의 어린 시절 육아의 장소로, 부모님의 노년의 자금줄로 40년 동안 굳건히 우리 가족들을 지켜주고 있는 아주 소중하고 고마운 곳이다. 그러나 월세만으로 두 분의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많이 부족하였다. 다행히 노령 연금이 조금 보조로 나와주고 있었고 특정 질병에 대한 국가보조금이 추가로 나와서 어느 정도 생활하시는 데에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 두 분은 워낙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내셨고 특히 국민연금이 생기기 이전 분들이라 노년에 대한 별도의 준비가 없으셨다. 물론 국가보조금이 없었다면 당연히 무녀독남인 내가 보조해 드렸을 것이다. 우리 세대까지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다음 세대에게는 그 당위성이 없다. 아니 부담이다. 할 수 있다면 아니 최선을 다해서 주지 말아야 할 부담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노후를 위한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고 특히 돈을 더 이상 벌지 못하는 시기인 은퇴 후 어떻게 잘 쓰며 살 것인가에 대한 은퇴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노후계획과 은퇴설계는 같은 듯 조금 다르다. 노년을 어떻게 안락하고 편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목표는 동일하다. 그러나 시기와 방법이 조금 다르다. 노후 계획은 10대 때에도, 20대 때에도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은퇴 설계는 50대 후반에 은퇴를 1~2년 정도 앞둔 상황에서 하는 것이 가장 실용적이다. 그 이유는 노후 계획은 구체적이지 않은 수입과 지출을 상정하여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은퇴 설계란 실질적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을 이용하여 얼마나 현명하게 지출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한 30살의 청년이 회사에 입사하였다. 그는 60살부터는 작은 별장을 소유하고 매주 1회씩 골프를 치며 1년에 1번씩은 해외여행을 다니는 부유하고 안락함 삶을 계획하였다. 그 계획에 의거 60세부터 임의의 수명까지의 예상 비용이 추산되고 이 청년은 그 얘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금부터 은퇴 전까지 벌어야 할 예상 수익도 동시에 추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수익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은퇴 설계는 조금 다르다. 은퇴 설계는 현재까지 실현된 수익을 바탕으로 자신이 노후 계획을 하였던 부분이 실현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할 수 있는 부분만을 가지고 설계하여야 한다. 물론 추가의 수익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에 상세한 계획이 필요한 것이다. 은퇴 설계는 구체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노후 계획은 다소 희망사항이 반영될 수 있지만 은퇴설계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계획은 상황에 따라 수차례 변경할 수 있지만 설계는 거의 실행 단계이기 때문에 변경 시 돈과 인력의 낭비가 많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퇴 설계는 왜 필요할까?

첫째는 안락한 노년의 생활을 위해서 이다.

안락함이란 경제적 안락함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한 불행하게도 돈을 배제하고 살 수는 없다. '에이 더러워서 난 무인도에 들어가 혼자 농사지어 밥 해 먹고 물고기나 잡아먹고살란다'라고 결심해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병'이다. 자급 자족하던 원시시대에도 아플 때는 치료를 받기 위해 부족의 무당에게 쌀이나 고기를 바라바리 싸가지고 가야만 했을 것이다. 수도야 냇물로, 전기야 촛불로, 가스야 나무로 대체하고 세면도구나 화장품은 그냥 없이 산다고 해도 '약'은 대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약초로 대체한다? 그럴 만큼 머리가 좋다면 나와서 한약방을 차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둘째로는 육체적 건강이다.

건강에 대하여는 굳이 내가 침 튀겨가며 역설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생애를 통틀어 모든 이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나이가 들어갈수록 면역력 저하에 따라 몸속에서 조용히 자숙하고 있던 병균들이 기회를 엿보다 표면으로 치고 나온다. 모든 전쟁은 방심으로 인해 일어나 듯 병은 방심한 육체에 깃든다. 노년의 육체는 잠깐의 방심에도 쉽게 무너지고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젊었을 때처럼 쉽게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병으로 무너지면 돈이고 가족이고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그냥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건강한 육체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셋째로 감성적 안정감이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스러워지고 여자는 남성스러워진다고 한다. 호르몬의 변화가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낸다고 한다. 그러나 호르몬의 변화만이 아니다. 주변의 상황도 많이 달라진다. 우선 주변 친구가 점점 없어진다. 아무리 친구가 많던 사람도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가 되어간다. 사망도 큰 이유가 되겠지만 사실 경제적 이유도 큰 몫을 한다. 내가 돈이 많아도 상대가 그렇지 않으면 부담을 느끼게 되고 만남이 서서히 뜸해지다 결국은 만남 자체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성격적 변화도 한 몫한다. 젊을 때는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던 일들이 노인이 될수록 참기 어려워지고 '내가 이 나이에 굳이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까지 저 놈을 만날 필요가 뭐가 있어?' 하며 만남을 꺼리게 된다. 즉 주변에 사람이 없어진다. 또한 나의 사회적 역할이 대폭 축소된다. 해결하기 힘든 일에 주구장창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전화 한 통화 걸려오지 않는다. 사회적 불필요품으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스스로 필요한 곳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그냥 마을어귀 장승과 같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에 적응을 못하면 정신적으로 병들게 되고 육체적인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퇴직 설계가 필요한 이유를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행복'을 위해서 이다. '행복이 무엇일까'하는 철학적인 부분까지 물어본다면 정확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할 수 있는 일 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답변을 할 것이다. 물론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인 문제, 육체적 한계성, 심리적 거부감 등 할 수 없는 요인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직 설계는 구체적이고 실행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내게 있어서 퇴직 설계는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고 그중 가장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제정적, 신체적, 감성적인 부분을 감안하여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시작하였기에 앞으로의 내용은 크게 자금설계, 건강설계, 감성설계의 세 방향으로 이야기해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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