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장기매매
나는 31세의 회사원이다. 이름을 말해도 잘 알지 못할 만큼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그나마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3년이나 취직 재수를 하다 간신히 들어간 직장이다. 턱없이 적은 월급에 사장 친척인 부장의 갑질에 하루하루 파리하게 죽어가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7월의 강렬한 태양이 아스팔트를 녹여 버릴 듯이 내려 쬐고 있었다. 오늘도 하루가 너무도 길 것 같다는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꾸물거리는 기분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집구석에서 식사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지 부장 놈은 아침 일찍 출근하여 회사 탕비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는 항상 나에게 설거지를 시킨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마지막 국물을 먹는 것 같다. 오늘도 역시나 마지막 숟가락까지 먹고 국물까지 싹 비워버린 후 출근하는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어이구, 송 대리님! 일찍 오셨네. 아! 그릇은 그냥 놔둬. 좀 있다가 내가 치울 테니까. 내가”
에휴 저렇게 말하고 한 번도 치운 적이 없었다. 늘 말 뿐이었지. 내가 안 치우면 나중에 출근하는 여직원이 설거지를 해야만 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선배인 여직원은 하루 종일 대놓고 나한테 싫은 티를 팍팍 내버린다. 한마디로 뒤끝의 끝판 왕인 여자였다. 그러니까 마흔이 되도록 아직 시집도 못 가고 그러고 있지. 하루 종일 저 여자의 쫑알거리는 잔소리를 듣고 있을 자신이 없었던 나는 할 수 없이 김치 그릇을 양은 냄비 속에 한꺼번에 때려 넣고 왼손으로 들어 올렸다.
순간 팔뚝에서 짜릿한 전기가 뒷 목을 타고 머리끝까지 전달되었다. ‘어, 뭐지?’ 하는 생각에 왼팔의 상완 삼두근 쪽을 내려다보았다. 요즘 새벽마다 경련이 발생하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상두근의 경련은 점점 격해졌고 견디지 못한 왼팔이 상하 전체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팔이 조금 흔들리는 것이야 뭐 그리 대수겠냐 마는 문제는 부장이 먹고 남긴 김치국물이 그 냄비 그릇에 같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참사의 시작이 되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부장 자리를 지나갈 때 경련이 시작되어 김치국물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한 것이었다. 부장의 책상 위에 놓인 하얀 서류가 핏방울 보다 진한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모니터에 튄 것은 다행이었다. 키보드 위를 사정없이 잠식한 국물은 사이사이의 공간을 파고들어 가 온통 자신이 잔해로 도배를 해 버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제출한 PT 보고서에 국물이 튄 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화장실에서 이빨을 닦고 들어오다 그 장면을 본 부장은 마치 망부석처럼 자리에 딱 멈춰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일 줄 몰랐다. 멍하니 떨리는 왼팔만 바라보던 나는 급히 오른 팔로 왼팔을 꽉 잡았다. 다행히 떨리는 팔은 서서히 진정되어 갔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왼팔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깜짝 놀랐다. 마치 남의 손을 잡는 듯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놀란 그 와중에도 오른팔을 놓지 않았다. 부장은 자리로 걸어와 싸늘하게 바뀐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송대리 이게 무슨 짓이지? 내가 자네보고 언제 설거지하라고 했나?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지. 이게 뭔 짓이야? 사무실을 온통 김치냄새로 도배를 했네. 도배를 했어.”
“부장님!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왼팔에 갑자기 경련이 와서요.”
“뭐 왼팔에? 뭐 수전증이라도 걸렸어? 아 됐고. 앞으로 절대 내 설거지 치우겠다고 건드리지 마.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리 가라고! 책상도 내가 알아서 닦을 테니까, 건드리지 말고 자네 자리로 가서 네 일이나 해.”
부장의 모니터에 튄 김치국물을 닦기 위해 물휴지를 뽑아 들고 다가서는 나를 보고 부장이 신경질 적으로 소리 질렀다. 부장의 고함소리에 나는 주눅이 잔뜩 들 수밖에 없었다. 내 잘못으로 발생한 일인 데다가 다른 직원들이 애써 만들어 제출한 서류까지 김치국물이 범벅이 되어 다시 제출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정면에 튄 것이야 앞쪽의 1~2장만 출력하면 되지만 옆쪽까지 국물이 묻은 것은 할 수 없이 전체를 다 다시 출력하여야만 했기에 동료들의 눈치도 싸하게 변했다.
‘제길 이게 다 이놈의 왼팔 때문이야. 도대체 왜 자꾸 경련이 오는 거지?”
아마도 한 달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처음에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한 느낌만 잠시 들고 사라졌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그 강도와 지속시간이 늘어나고 있었다. 오늘 새벽처럼 5분여 동안 격한 경련이 지속되기도 하고 심지어 낮에도 가끔씩 경련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그러지 말고 병원에 한번 가봐. 뭐 지나가다 들은 이야기인데 자율신경계에 문제가 생겨도 그럴 수 있다고 그러더라. 그리고 이 와이셔츠는 못 입겠다. 새로 하나 사야겠네. 김치국물이 잘 안 빠지더라고”
동기인 김대리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위로하듯 이야기했다. 나는 내 와이셔츠를 한번 내려다보고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이 같잖지도 않은 중소기업은 내근, 외근 상관없이 모든 직원에게 와이셔츠를 강요하고 있다. 여직원은 블라우스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내규로 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 자유로운 세상에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 목구멍이 포도청만 아니었다면 이곳에 3년 넘게 남아있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군데군데 몽글거리며 번져나가는 김치국물의 자국을 조금이라도 지워보려고 화장실의 세숫비누로 살살 비벼보았다. 약간 흐리게 변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고 어렴풋이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다. 반쯤은 물에 젖은 와이셔츠를 휴지로 꾹꾹 눌러 물기를 말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앞으로 부장님의 설거지 거리를 내가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고 부정적인 것은 그 설거지를 경리과 여직원들이 번갈아 가며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휴게실에서 자기들끼리 무엇인가 쑥덕거리더니 그렇게 결정하고 나오며 단체로 나를 한번 째려보고 각자의 일을 시작하였다. 의도치 않게 경리과 여직원들의 공적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씨! 일부러 그런 것 아냐? 설거지하기 싫어서? 왼팔에 경련은 무슨? 멀쩡하기만 한데”
점심시간에 여직원들이 휴게실에서 모여 이런 말로 내 뒷담을 하고 있었다. 김치찌개를 점심으로 먹은 나는 입안이 텁텁하여 커피라도 한잔 마실까 하고 휴게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들려오는 여직원들의 수군거림에 발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오해받는 것도 싫지만 조금씩 심해져 가는 왼팔의 상태가 슬슬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떨떠름하게 인상 쓰는 부장에게 왼팔의 사정을 조금 과하게 살을 붙여 간신히 오후 반차를 얻을 수 있었다. 부장은 마치 큰 인심이라도 썼다는 듯이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면서 결재를 해 주었다. 씨 X! 내 당연한 권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