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장기매매
회사를 빠져나와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섰다. 병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오기는 했는데 갑자기 어느 병원을 가야 할지 머뭇거리게 되었다.
‘왼팔의 근육이 문제일까? 아니면 신경의 문제? 그도 저도 아니면 뇌? 아냐. 그렇게 까지 확대 해석하지는 말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 근처의 신경외과를 검색하기 시작하였다. 기왕 검사할 거라면 대학병원이 좋겠지만 예약도 하지 않고 가면 당일에 검사를 받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우선 근처 개인 병원을 가기로 하였다. 네이버에 가까운 정형외과를 검색하자 ‘연세정형외과’라는 상호를 가진 병원이 가장 상위에 랭크되었다.
‘뭐. 최소한 연세대 의과를 나온 놈이 원장을 하거나 의사 중에 한 놈은 그 학교를 나왔으니 이런 이름을 사용했겠지’하는 생각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서 있는 사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평일 낮 시간에 신경외과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쩌면 병원이 별로 좋지 않은 곳일지도 모르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니 흰색의 깔끔한 벽지와 따스한 감성이 무한히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은은한 LED 조명이 데스크를 밝히고 있었다. 상하 연한 분홍색의 제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흔한 자본주의 미소를 보여주며 나를 맞아하였다.
“팔에 자꾸 경련이 나서요. 여기 이 왼팔이요”
“자리에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병원의 분위기에 동화된 듯 간호사는 차분하지만 또렷하게 이야기하였다. 데스크 앞 쪽에 놓여있는 널찍한 소파는 페브릭 소재로 푹신하고 편하였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병원 자동문이 열리며 하얀 가운을 걸친 남자가 진료실로 걸어 들어갔다. 아마 화장실이라도 갔다 온 것 같았다.
“송 XX 님! 진료실 들어가세요.”
의사는 생각보다 젊어 보였다. 보통 신경외과라 그러면 50대 후반의 늙수그레한 의사를 생각하는 게 보편적이지 않는가? 그런데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의외로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젊은 의사였다. 돈이 좀 있는 집안의 아들인가 보다 하고 편견이 먼저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 젊은 나이에 월급제 의사가 아닌 개인 병원 원장으로 있기는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증상에 대하여 자세히 물었다. 나는 최대한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였고 나의 말을 끝까지 참을성 있게 경청한 의사는 우선 검사부터 해보자고 제안하였다. 나는 진료실을 나와 X-Ray와 기초 피검사 등을 진행하였다. 검사의 결과는 30분 이면 나오는 것이기에 노란색의 페브릭 의자로 돌아와 등을 기대고 편하게 앉았다. 무료하게 핸드폰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며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른 환자는 아무도 없었다. ‘제길! 아무래도 병원을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다시 진료실 의자에 앉자 의사는 아주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송 XX 씨! X-Ray 하고 피검사에서 특별히 나쁜 것은 없어요. 칼륨 수치도 좋고... 혹시 상반신 쪽에 큰 수술을 받거나 사고로 다친 적 있어요?”
“아. 네. 심장 수술이요. 심장이 안 좋아서 이식수술을 받았습니다. 1년 전에요.”
“아! 그래요? 그럼 수술 후유증일 수도 있겠군요. 식사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12시에 먹었으니까 한 2시간 반정도 지났습니다.”
“잘됐네요. X-Ray나 피검사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니 CT 한번 찍어보죠. 왼쪽 삼두근하고 심장 쪽 전체적으로...”
나는 30만 원이라는 비용이 아깝기도 하였지고 과잉 진료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다음에 하겠다'라고 말하고는 병원을 황급하게 나와 버렸다. 환자가 거의 없는 병원이라 도저히 신뢰감이 생기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내일 가서 부장한테 뭐라고 말해야 실수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얕은 잔머리로 가득 차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건물을 나와 다시 아까 서 있었던 사거리로 돌아왔다. 3시가 거의 다 된 시간. 이미 반차를 냈으니 회사로 들어갈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핸드폰을 들고 저장된 전화번호를 쭉 훑어보았다. 4백 명의 이름이 줄지어 적혀 있었지만 편하게 전화해 술이나 한잔하자고 이야기할 만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아직 취업하지 못하고 꼴에 공시를 보겠다고 4년째 공부를 하고 있는 한 친구 놈의 번호가 눈에 띄었다. ‘김진호’라는 놈이었다. 녀석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 당시 우리 문과의 전교 1등이었고 서울대에 무난히 들어갈 것이라고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녀석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금 수저이고 엄친아였다. 부자에 공부도 잘해, 거기에 몸도 다부져서 모든 운동을 다 잘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 녀석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는 않았다. 고 2 때 부모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던 중 미친 졸부 아들놈의 음주운전으로 정면 충돌하여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아! 돈은 남았다. 부모님은 두 분 다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친구 녀석은 반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의 부상을 입었다. 사고의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여 절뚝거리며 걸어야만 했다. 2년 휴학 후 복학하여 대학을 가기는 했으나 예상외로 철학과를 들어가 실망한 선생님들에게 한 동안 시달려야 했다. 대학 생활 중 우연히 길에서 만나 술 한잔한 것을 계기로 녀석과 나는 자주 어울렸다. 녀석은 취업에 대한 의욕 자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이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겨주시기도 하였고 사고로 인해 받은 보험금과 보상금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스스로도 취업을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입으로만 매일 공무원이 되겠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