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장기매매
무교동의 한 구석에 폐업의 폭풍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무정낙지' 집으로 녀석을 불러냈다. 더운 날씨에 다리를 쩔뚝거리며 가게에 들어오는 녀석의 얼굴에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100kg이 넘어가는 녀석의 몸뚱이는 지금처럼 고온 다습한 여름 날씨에는 극악할 정도로 취약하였다. 녀석은 자리에 앉자마자 탁자에 놓여있는 차가운 물병을 집어 들어 입을 대고 들이켰다. 물병의 거의 반을 들이부은 후 용이 트림하듯 크게 한번 숨을 내뿜고 나서야 나를 처다 보았다. 녀석은 덩치만큼이나 말술이었다. 소주 5병이 들어가고 나서야 조금 취기가 도는지 몸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평소 말이 별로 없던 녀석임에도 술이 들어가자 부쩍 말이 많아졌다. 사실 나는 녀석이 부러웠다. 이 힘들고 지겨운 직장에서 죽어라 버티지 않아도 되고,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오히려 이자에 이자가 쌓여서 남아 돌만큼의 재산이 있으니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무심결에 ‘이 부러운 놈아’라고 아무 생각 없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자 술에 취해 주절주절 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낯빛이 싹 바뀌면서 눈을 위로 치켜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부럽다고? 내가? 뭐가? 왜? 네가 내 삶이 어떤지 알기는 알아?”
“야! 너만 힘들어? 불행한 일이 있었기는 했지만 돈도 많고 사는 데 아무런 지장도 없으니 걱정도 별로 없잖아. 뭐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 나보다 힘들어? 난 가난한 주제에 심장도 좋지 않아서 집안 돈 다 긁어모아 이식받아 겨우 살고 있어. 나 때문에 가족은 집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고 나도 지긋지긋한 좃소 기업에 목매달고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 너란 놈을 부러워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흐흐흐 넌 그래도 인간답게 살잖아. 난 그 사고 이후 한 번도 정상적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어. 난 인간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어. 그 고통을 네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취했군. 취했어. 네가 인간이 아니면 뭐야? 어중간한 존재는 무슨... 오크냐?”
“나! 귀신이 보여. 사고 후 의식이 없는 한 달 동안 연옥을 다녀왔어. 나는 그 사고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고 하더라. 그런데 하늘의 실수로 죽지 않아야 할 엄마가 죽은 거래. 그래서 날 살려준다고 하더라고. 엄마의 남은 수명만큼 살다 오라고. 근데 눈을 떠보니 사고 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있더라고. 온통 죽은 사람들이 사망 시의 흉측한 모습 그대로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고 있어. 난 너무나 무서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어. 내가 눈을 뜨면 귀신들도 나를 쳐다봐. 내가 자신들을 보는지 못 보는지 확인하려는 듯 내 눈앞에 자신의 무서운 얼굴을 들이밀고는 물어봐 자신이 보이냐고. 내가 그들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내게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마구 달려들거라 하더라. 그렇게 귀신을 자꾸 접하다 보면 영매 체질로 변하여 잘못하면 몸을 빼앗길 수도 있데. 그래서 난 고시원 한 구석에서 숨어서 살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그 어느 곳도 편하게 나다니지 못해. 그런데 부럽다고?”
“미친놈! 취했네. 귀신은 무슨”
“네 왼쪽 팔에도 하나 붙어있네. 검은색의 손인데 손가락 두 개가 널 꽉 붙들고 있네.”
“뭐? 이 자식 진짜 미쳤냐. 있기는 뭐가 있어? 요즘 안 그래도 팔에 경련이 가끔 와서 기분 더러운데...”
“아직 손가락뿐이니까 별일은 없을 거야. 근데 교회라도 다니고 착하게 살아. 귀신은 어쨌든 음습하고 어두운 장소나 사람을 좋아하니까.”
“시끄러워 에이 재수 없는 자식. 나 가련다. 또 한 번만 그런 소리하면 다신 너 안 본다.”
술에 취해 계속 뭐라고 주절거리는 녀석을 뒤로하고 술집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재수 없는 소리나 하고 말이야. 영 안 좋아졌네. 에이 기분 더러워. 얼른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진호 자식의 이상한 말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진 나는 집에 오자마자 대충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술 때문에 정신이 몽롱했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진호가 말했던 검은 손가락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제길 나쁜XX 괜히 이상한 말을 해 가지고.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드네.’
나는 계속 힐끔거리며 경련이 일어났던 왼쪽 팔을 쳐다보았다. 아무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지금은 경련도 없고.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왼쪽 팔에서 시작된 찌릿한 고통에 잠이 깨었다. 또다시 경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상완 삼두근뿐만 아니라 왼팔 전체가 경련으로 떨리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기존과는 다르게 팔의 모든 근육이 비틀린 채 마비되어 뻣뻣해지며 격렬한 고통이 뒤를 따라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른손으로 왼팔은 미친 듯이 주물렀다. 그러나 마비는 풀리지 않고 점점 팔의 근육이 점점 더 심하게 뒤틀려갔다. 겁이 덜컥 난 나는 오른손을 주먹을 쥐고 왼쪽 팔의 상완 삼두근을 마구 때렸다. 타격에 굳어버린 근육이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아 마비가 풀리기를 기대하였다. 하지만 왼팔의 마비는 조금도 풀리지 않았고 점점 더 꼬이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자비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지니고 있지 않은 핸드폰 알람이 질러대는 비명 때문이었다. 토요일이었지만 어제 사용한 반차로 인해 다 끝내지 못한 업무가 있어서 알람을 맞춰놓았던 것이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젯밤 겪었던 일이 마치 꿈인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왼팔에서는 마비는커녕 고통의 잔여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어제의 일이 꿈이었는지 사실이었는지 조차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마비나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잔고 한 푼 없이 텅 비어있는 내 통장이었다. 월요일 아침까지 서류 제출하라던 재수 없는 부장 놈의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혼란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급히 서둘러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는 남지 않았다. 휴일 출근은 평일 야근보다 몇 배 힘겹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보고서를 끝내고 퇴근할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가는데 역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에서 누군가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단정하고 제법 가격이 되어 보이는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고 있는 60대 후반 정도의 남자였다. 옷과 동일한 검은색의 중절모를 쓰고 있는 남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지하로 걸어 내려가는 나의 뒷모습을 고개까지 돌려가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저 심심한 노인네가 사람 구경으로 시간 때우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급히 발길을 옮겼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에는 몸이 너무도 피곤했다. 얼른 집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하고 싶었기에 발걸음을 더욱 서둘렀다. 내가 계단의 중간쯤 내려갔을 때 지하철 들어오는 음악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순간 갈등했지만 이번 기차를 타기로 결심하고 한 번에 두 칸씩 껑충거리며 뛰어내려 갔다. 지하철의 문이 닫히기 바로 직전, 간신히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토요일 늦은 시간임에도 지하철 안은 매우 혼잡하였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서서 힘든 몸을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강남역을 지나가자 썰물에 물 빠져나간 갯벌처럼 지하철 안이 한산해졌다. 마침 바로 앞에 자리가 생겨 얼른 앉았다. 잠깐 핸드폰을 보다가 솔솔 몰려오는 졸음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도 않아 왼팔에서 몰려오는 아픔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니 왼팔만이 아니었다. 왼쪽 어깨와 가슴의 근육들까지 파닥거리며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왼쪽 팔이 눈에 띄게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경련에 떨었다. 갑작스러운 마비와 비틀림의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팔이 아파요. 도와주세요’
이상한 것은 팔을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도 지하철 안의 그 누구도 나에게 다가와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소리 지르면 처다 보기라도 할 것인데 아무도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나는 순간 ‘꿈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꿈이라 하기에 지나치게 고통스러웠다. 이것은 결코 꿈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현실이라 하기에는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깊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떨고 있을 때, 누군가 나의 왼팔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바로 옆에 앉아있는 남자였다. 그 남자의 손이 닿자마자 왼팔의 비틀림과 경련은 순간적으로 사라졌고 나는 멍하니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으로 가볍게 인사를 남기고 지하철을 급하게 내렸다. 그러고는 플랫폼에 서서 지하철 창문을 통하여 떠나가는 나의 모습을 끝까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그제야 나는 그 남자의 표정이 지하철 입구에서 본 노신사와 너무도 닮아있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