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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경련이 시작되었다. 왼팔 삼두근에서 시작된 경련은 조금씩 오른팔에까지 퍼져 나가며 상반신 전체가 도마 위에 놓인 광어처럼 파닥거리게 만들었다. 격렬한 파닥임은 경련을 뒤쫓아 와 비틀림과 마비로 온 근육을 쥐어짜기 시작하였다. 1주 전 진호 녀석과 술 마신 후부터 조금씩 발생하기 시작한 근육의 비틀림과 마비는 극심한 고통을 동반하여 한꺼번에 몰려왔다. 몸이 십자가에 묶인 것처럼 양팔이 좌우로 벌어지고 팔이 앞쪽으로 한 바퀴 돌아 비틀린다. 그 여파로 가슴은 허공으로 들어 올려지고. 천장을 향해 한없이 솟아오른 가슴은 누군가 강한 힘으로 뒤트는 듯이 비틀어진 양팔과 더불어 완전히 마비된 상태로 3~4분 정도 굳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져 꼼짝도 못 하게 만든다. 남들은 고작 3~4분이라고 말하겠지만 나에게는 두 시간 이상 아니 영겁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경련이 잦아들고 마비와 비틀림이 서서히 약해지고 결국 정상으로 돌아오도 한참을 바닥에 누운 채 헉헉거려야만 겨우 정상적인 숨을 쉴 수 있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마른세수를 여러 차례 하여 보았지만 한번 나가버린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10여분이 지나 온몸을 덮었던 땀이 서서히 식어가자 한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여 스멀스멀 침범하였다. 팔과 등에서 소름이 오소소 돋아 오르며 뒷목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련이나 마비, 비틀림 등과 같은 이상 증세가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점차 몸 전체로 퍼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다가 온몸에 경련이 발생하고 마비와 비틀림이 오면 끔찍하게도 그 상태로 굳어져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들여다본 핸드폰에서 새로 문자가 왔다고 깜박거렸다. 얼마 전에 찍었던 병원에서 온 CT 검사결과였다. 뻔뻔스럽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글자가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그 글자에 이어서 다른 증세가 있다면 언제든 재검사 가능하다는 글자였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고 있는데 문제가 없다고? 역시 완전 돌팔이 XX였어. 그저 이 검사 저 검사받게 해서 돈이나 벌어먹으려고 하네. 나는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이게 말이야 방귀야?’
분노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속 확대되어 가는 증세에 다른 병원도 이미 다 가보았었다. 그러나 모두 한결같이 아무 이상 없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답답해졌다. 암보다 아니 에이즈 보다 더 독한 불치병에 걸린 환자가 된 것 같았다.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문득 무당이라도 찾아가 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친구 김진호가 갑자기 떠 올랐다. 비록 취했었지만 경련이 시작되었던 왼쪽 팔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새벽이었지만 내게는 느긋이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짜증 내는 놈을 간신히 달래 저녁에 약속을 잡아놓고 출근을 서둘렀다. 너무 일찍 일어난 까닭에 회사로 가는 시간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다행히 몸도 이상이 없이 상쾌하였다. 집을 나서 지하철 역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여유롭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음악소리에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계단을 내려갔다. 다음 차를 타도 시간이 넉넉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러한 시간적인 여유로움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는 서늘한 두려움에 떨려오는 가슴을 도저히 진정시킬 수 없어 빠르게 걸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더군다나 집에서 나올 때부터 곳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신사복에 중절모를 쓴 노신사들 때문에 불안은 더욱 가중되었다. 혹자는 ‘아닐 거야. 단지 네 느낌이야. 새벽이니까 노인들이 많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부드러우면서도 무언가 위화감이 도는 미소만 아니었더라면. 그들의 표정은 전부 똑같았다. 갑자기 얼마 전 지하철에서 보았던 노신사가 기억났다. 이들의 표정은 그 노신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다. 방금 탄 지하철 안에도 노신사가 두 명이나 있었다. 양복의 색이 검정과 군청으로 서로 다르다는 점만 제외하면 한 사람이 둘로 나뉘어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 건너편 자리의 좌, 우측 끝을 차지하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얼굴은 정면만 바라보며 꼿꼿이 앉아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눈이 사시처럼 한쪽으로 몰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두 정거장만 가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기에 참아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지하철을 내려 회사까지 오는 동안 극심한 공포로 바뀌게 되었다. 지하철의 노신사들은 내가 내릴 때까지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같은 역에서 내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라오는 지하철 계단에서, 회사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내 단골 커피숍 앞에서 그리고 회사에서 가까운 버스 정거장 대기소에서 동일한 옷을 입고 동일한 표정으로 나만을 바라보는 노신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 들어와 내 자리에 착석하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조금은 진정할 수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커피를 한잔 마시려는 그때 갑자기 다시 뒷머리에 소름이 끼쳐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를 쳐다보던 그 많은 노신사들의 얼굴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매트리스란 영화의 마지막 레오의 싸움 장면이 떠 올랐다. 수 없이 많은 스미스 요원에게 둘러 쌓여있는 듯한 공포감이 가슴을 옥죄어왔다. 나는 급히 진호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사가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5분도 버티기 힘들었다. 녀석을 만나도 특별한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녀석 말고는 다른 대안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최소한 내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 녀석이 유일했으니까.
녀석의 핸드폰은 영혼 없는 컬러링 만을 계속 내뱉을 뿐 연결이 되지 않았다. 세 번, 네 번, 계속적인 통화 시도에도 녀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급해진 마음에 회사를 뛰쳐나갔다. 녀석이 있다는 노량진의 고시원으로 가려고 다시 지하철 역을 향하여 뛰어갔다. 사거리를 지나 막 지하철 입구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횡단보도를 절뚝거리며 건너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내 눈을 스쳐갔다. 급히 멈추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녀석이었다. 나는 급히 몸을 돌려 그쪽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때마침 신호가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녀석을 애타게 불러보았지만 내 목소리가 녀석에게 까지 닿지는 않는 듯하였다. 녀석은 건물 사이에 나있는 작은 골목길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애가 탔지만 6차선 대로를 빨간불에 함부로 건너갈 수는 없었다.
초조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나는 녀석이 사라진 골목으로 쫓아 달려갔다. 그리 복잡한 골목이 아니었으나 출근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골목은 매우 혼잡스러웠다. 사방을 둘러보던 나의 눈에 저 멀리 언덕 위에 서있는 교회 정문으로 걸어가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부르며 언덕을 달려 올라갔다. 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며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 호흡하기가 곤란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녀석을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들어야만 했다. 결국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올라가 교회 정문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그리 큰 것처럼 보이지 않았던 건물이 가까이서 보니 굉장히 웅장하고 거대했다.
교회 외부에서는 녀석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오늘이 평일이라는 것도 잊고 교회 예배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을 밀었다. 커다란 문은 무겁고 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맥없이 열렸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은 고즈넉하였다. 300명 이상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공간은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색조명 만이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금 더 앞쪽으로 나아갔다. 예배당의 맨 앞쪽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가 진호 녀석이라 확신하고 반가운 마음에 예배당이라는 것도 잊고 뛰어갔다.
“진호야! 야 임마! 진호야!”
나의 외침에도 녀석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잠시 사람을 착각했나 하는 의심이 들었으나 나의 몸은 이미 관성에 의해 녀석의 바로 뒤까지 접근해 있었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기 위해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잡아당겼다. 휙 돌아서 녀석의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정면으로 보인 녀석의 얼굴은 내 친구 김진호가 아니었다. 그 얼굴은 사방에서 나를 지켜보던 노신사의 얼굴이었다. 여전히 부드럽지만 위화감이 가득 느껴지는 미소를 띠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으악’하는 비명과 함께 나는 뒤로 두 발자국 물러섰다. 동그랗게 커진 나의 눈은 너무도 이질적인 노신사의 얼굴에 고정된 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