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버스
헉헉! 안돼 저 버스를 꼭 타야 돼.”
장천은 정류장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어갔다. 버스는 정류장 10m 앞에서 차 뒤쪽의 브레이크 등의 붉은빛을 어두운 사방에 뿜어내며 서 있었다. 다행히도 버스는 장천을 기다려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장천은 급히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턱턱 막혀오던 숨을 크게 한번 내뱉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장천은 가슴속에 손을 넣어 안주머니에서 낡은 지갑을 꺼내 단말기로 가져갔다. ‘띡’ 소리와 함께 “장천 승차입니다”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장천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단말기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엉? 뭐지? 왜 내 이름이 나오는 거지? 아니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이게 맞는 거야?’
놀라움에 멍해진 장천은 단말기에 손을 댄 체 그대로 굳어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장천의 등을 세게 밀면서 버스로 올라탔다.
“거 좀 길 막지 말고 비키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거친 반말로 자신의 앞이 막힌 것에 대한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장천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자신보다 나이가 확연히 어려 보였으나 커다란 덩치와 살벌하게 생긴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기가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녀석이 단말기에 카드를 대자 아까와는 다르게 “승차입니다”라는 일반적인 버스와 똑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이 그럼 그렇지. 아마도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대중교통에서 내 이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 무슨 AI 버스도 아니고... 내가 너무 긴장했었나 보군.'
장천은 그제야 고개를 들고 여유롭게 버스 내부를 살펴보았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확실히 승객은 몇 명 없었다. 빈자리도 꽤 많이 보였다. 장천은 맨 뒤에서 두 번째 자리로 가서 지친 몸을 털썩 주저앉혔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으로 대충 훔쳐내곤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다리를 쭉 펴고 뒤로 눕듯이 기대자 피곤함이 온몸으로 몰려들었다. 장천은 자신의 눈이 서서히 까물거리며 머리가 창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스르륵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버스가 도심의 요철을 지나가고 있는지 덜컹 소리를 내며 크게 흔들렸고 타고 있던 승객들도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 여파에 장천도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비비며 밖을 쳐다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가로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암막 커튼을 친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밤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실루엣 하나 보이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창문이 마치 거울인 것처럼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버스 하나가 마치 허공을 날듯이 장천이 타고 있는 버스를 쫓아와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창문에 비추어진 상대 버스에는 장천이 탄 버스와는 달리 모든 자리에 승객들이 꽉꽉 차 있었다. 장천은 무심결에 자신의 정면에 있는 상대버스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불안한 눈빛으로 떨고 있는 남자 한 명이 어깨를 최대한 꾸부리고 몸을 접듯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 데다가 남자는 오른손 검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남자가 왜 저렇게 불안해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 남자 옆을 바라보는 순간 장천의 궁금증은 바로 풀려 버렸다.
그 남자 옆에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거인이 앉아 있었다. 머리가 거의 버스 천장에 닿을 것처럼 보였다. 너무 커서 처음에는 그냥 커튼이 쳐진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저런 덩치가 어떻게 좁은 버스 좌석에 앉아 있을 수 있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거인이 얼굴을 천천히 돌려 장천을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장천은 움찔하며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도저히 그 거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장천이 앞만 보고 있음에도 거인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천이 눈을 질끈 감고 얼굴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상 속에서 거인의 눈빛을 떨구어 내려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놈의 눈빛은 장천의 뒤통수에 바짝 붙어 있는 것처럼 떨어지지 않고 끈적하게 붙어있었다. 갑자기 두려움을 느낀 장천은 고개를 푹 숙여 차창 아래도 몸을 최대한 숨겼다. 그럼에도 거인의 눈빛은 장천의 뒤통수에서 서서히 내려와 목에 극도로 차가운 한기를 내뿜고 깊이 숙인 고개 앞 쪽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장천은 고개를 들어 창문에 얼굴을 가져갔다. 거인이 건너편 버스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암흑에 비친 건너편 버스에는 여전히 승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장천의 눈이 잠시 깜박이는 순간 건너편 버스의 승객들이 동시에 연기처럼 휙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한 명만 그 거인만 빼고. 장천이 놀라움에 눈만 껌뻑이며 굳어져 있을 때 건너편 버스에 있던 거인의 얼굴이 확 하고 갑작스럽게 장천에게로 다가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공포에 질려 있는 장천의 바로 앞에까지 다다른 거인의 얼굴은 웃는 것도 아닌 우는 것도 아닌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장천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눈과 코 그리고 귀 등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나오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피가 빠져나올수록 거인의 얼굴은 급격히 쪼그라들어 눈알이 터질 듯이 앞쪽으로 튀어나왔다. 온몸이 굳어져 움직이지 못하고 그악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던 장천은 결국 터져 나온 거인의 눈알에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버스 안의 몇 명 안 되는 사람들이 장천을 동시에 쳐다보았다. 장천은 그들의 시선에 당혹함을 느끼며 거인이 있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인이.... 거인이...."
그러나 장천이 가리킨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으나 그 어느 곳도 처음 버스를 탈 때 보았던 풍경과는 전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인도, 오른쪽 손톱을 자근자근 씹어대던 우울한 남자도 모습은커녕 있었던 흔적조차도 전혀 없었다. 망연자실하여 다시 자리에 주저앉은 장천은 식은땀을 닦으며 거친 숨을 내뿜었다. 이 버스에 올라탈 때부터 계속 발생하는 기묘한 일 때문에 장천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 거지? 이게 뭐지?’
순간 머리에서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장천은 자신의 몸이 한쪽으로 쓰러지는 것을 느끼며 옆으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