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속삭이는 공포 (3-2)

악인 버스

by 곰탱구리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란다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로 미루어 보아 시베리안 허스키나 말라뮤트 같은 커다란 견종인 것 같았다. 이 집은 개가 없었으니 아마도 옆집이나 옆집 건너편 집인 듯싶다.


장천은 고개를 돌려 마루 바닥을 보았다. 이제야 겨우 눈에 보이는 핏자국은 다 닦은 듯싶었다.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벽면에 튄 핏자국도 지워야 하고 시체도 두구나 마당에 묻어야 했다. 장천은 그나마 미리 마당에 구덩이를 파 놓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화장실에 가서 새로운 수건을 락스물에 집어던졌다. 쪼그려 앉아 수건을 빠는 모습이 마치 제 집은 양 자연스러웠다. 30여분 동안의 청소를 마친 장천은 옷을 모두 벗어 소파에 걸쳐 놓았다. 그러고는 미리 마당에 옮겨놓은 집주인과 그 부인을 구덩이 속으로 집어던졌다.


칼에 찔려 갈라진 배와 가슴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장천은 흙을 퍼서 서로 얽혀있는 두 사람의 사체 위에 뿌리기 시작하였다. 10년 넘게 막일로 다져온 장천에게는 집안을 청소하는 것보다 마당의 구덩이를 메우는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사람을 죽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대 초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저 성질에 따라 우발적으로 칼을 휘두른 것이 상대의 경동맥을 손상시켜 40대 남자를 그 자리에서 즉사시킨 것이 그의 첫 살인이었다. 그러나 살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판사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폭행치사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었다.


고아였던 장천은 영치금 한 푼 없이 힘들고 괴로운 교도소 생활을 그저 몸뚱어리 하나로 다 버텨내야만 했다. 그의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은 험악한 교도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거친 생존경쟁에서 생긴 후천적인 성격이었다.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 내었어야 했던 무시무시한 폭력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처음 사람을 사고로 죽였을 때 느꼈던 후회와 두려움은 교도소에 남겨 놓고 출소했기에 지금은 그러한 감정을 눈곱만치도 느끼지 않았다. 돈을 빼앗기 위해 두 사람을 칼로 찌르고 마당에 파묻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드는 생각은 그저 매장하기 더렇게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저 먹고살기 위해 하는 것뿐이라는 지독히도 냉정한 변명이 죄책감 자체를 희석시키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구덩이 속에 자빠져 있는 두 늙은이는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죄책감은 더욱 들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한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고금리의 이자를 뜯어내는 악덕 사채업자였기 때문이었다.


장천이 교도소에서 거친 복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을 때 그에게는 달랑 자유로운 몸뚱어리 하나 밖에 남은 것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잘 먹지도 못하고 자라서인지 체격도 왜소했고 힘도 그리 세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공사판을 전전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가다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낙이 없는 그에게 늦게 배운 술은 유일한 취미이자 벗이자 배우자이자 그의 전부였다. 삼사일 일하여 돈을 받으면 고시원에 박혀서 오로지 술만 퍼 마시는 것이 인생의 모든 것이었다.


그나마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그에게 있어서는 매우 행복한 시기였다. 하늘은 마치 그가 조금이라도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듯이 이리저리 몰아붙여 불행의 아가리에 홀랑 집어던졌다. 이미 술에 중독되어 버린 장천은 그날도 술이 덜 깬 상태로 일을 나갔고 벽돌을 지고 3층으로 올라가던 도중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도 머리가 아닌 다리부터 떨어져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오른쪽 다리가 부러져 5개월 이상 깁스를 해야만 했다.


모아 놓은 돈도 하나 없었던 장천은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본 찌라시에 적혀있는 사채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전화 한 통은 또 다른 지옥 속으로 그를 몰아넣어 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사채업자들의 위협과 폭력에 결국 신장을 떼어주고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배운 것도 없고 몸도 불편한 장천을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삼 일을 굶다가 쓰레기통에 있는 햄버거를 주워 먹던 장천은 밀려오는 슬픔과 저주받은 듯한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로 미친 듯이 몸부림쳤다.


결국 소주 2병을 병나발 불고 그 사채업자 집의 담을 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늙은 것들은 죽어 마땅한 악마새끼들일 뿐이었다. 꼴 보기 싫은 사채업자의 얼굴을 흙으로 거의 덮어갈 때 갑자기 대문 밖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천은 긴장하여 손을 멈춘 채 밖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불쑥 들어왔다. 그들은 마당의 상황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세 명의 남자들은 장천과 마당의 구멍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런 xx’이란 욕과 함께 장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그 사채업자 아래서 대부금 상환을 하던 부하들이었다. 장천은 술김에 일을 저지르느라 부하들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라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담을 넘어 옆집을 통해 도망가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악다구니를 치며 장천을 쫓아 뛰어왔다. 골목 사이사이를 이리저리 도망치는 장천과 그런 그를 집요하게 쫓아오는 사채업자들의 추격전이 이어졌다. 비록 오른쪽 다리가 불편하기는 했지만 워낙 몸이 가벼웠기에 장천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피해 계속 도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장천이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에서 멀리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달려가는 순간 그의 왼쪽에 있는 작은 골목길에서 무언가 환한 빛이 튀어나와 몸을 강하게 들어 받았다. 그 충격으로 그는 편도 3차선의 중간까지 밀려가 넘어졌고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놀란 차들의 급한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장천은 급히 일어나 건너편으로 뛰어갔고 10여분을 달려 지금의 이 버스에 올라탔던 것이었다.


‘끄응.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자꾸 이상한 일만 일어나고 있고...’간신히 눈을 뜬 장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그 버스 안이었고 운행을 하지 않고 어딘지 모를 곳에 멈춰 서 있었다. 여러 번 눈을 깜박여 정신을 가다듬고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기절해 있던 시간은 생각과 달리 그리 길지 않았다. 한두 시간 이상은 흘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겨우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밖은 아직도 칠흑같이 어두웠다.


‘아무리 변두리라도 가로등 하나 없이 이렇게 어두운 거리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있었나?’하는 의아함이 머리에 스쳤다. 그러나 불현듯 오른쪽 옆구리에서 불에 달궈진 듯한 통증이 아찔하게 몰려왔다. 고통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에 차와 부딪쳤던 기억이 살아나자 갑자기 부딪쳤던 옆구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시작된 것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고통이 조금 진정되었다. 장천은 숨을 헉헉 몰아 쉬며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이리저리 더듬어 다친 곳을 찾으려 하였다. 다행히도 피가 나오는 곳은 없었으나 타박상이 심한 듯이 숨 쉴 때마다 탁탁 결리는 것이었다. 최소한 갈비뼈 3~4개 이상 부러진 것 같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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