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속삭이는 공포 (3-3)

악인 버스

by 곰탱구리


그때 버스 앞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생긴 듯 승객들이 모두 버스 앞쪽에 모여 앞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다행히 가슴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장천은 ‘끄응’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버스의 앞 창으로 환한 빛이 비쳐왔다.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사방이 불기에 휘말려 타오르고 있었고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폭발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거대한 화염의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라 서로 웅성 걸리 뿐이었다. 장천은 다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검색을 하려고 인터넷을 터치하였지만 연결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만 나올 뿐 계속 먹통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글쎄요? 전쟁이라도 났나 봅니다. 앞에 도시가 전부 화염에 휩싸였어요.”

“사람들은, 사람들은 혹시 보입니까?”

“아뇨. 아직은 아무것도 안보입니다. 그래서 기사님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근데 여기가 어디지 아시나요?”

“아뇨.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온통 다 어두워서... 앞은 화염에 폭발에 난리 난리이고”

그때 운전수 바로 뒤에 서있던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신경질적으로 끼어들었다.

“좀 시끄러워. 안 그래도 답답해 죽겠는데 뒤에서 속 시끄럽게 쫑알거리고 지랄들이야. 밖에 상황 좀 살펴봐야 하니까 조용히들 해!”

“아니 그냥 우리도 궁금하니까 그렇죠”

“그런데 기사님! 여기가 혹시 어디쯤인가요?”


장천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 무언가 결심한 듯이 차의 액셀을 밟았다. 차는 서서히 앞으로 전진하였다.

“이렇게 가도 돼요? 괜찮겠어요?”

“달리 다른 방법이 없잖소. 더 좋은 방법이 있소? 그리고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갈 수밖에 없소.”


무뚝뚝하던 운전사가 침묵을 깨고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차는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 도심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도심 외각은 그나마 혼란이 덜 하였다. 화염과 가로등의 불빛으로 주위의 상황을 살펴보기에는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도심 중앙으로 들어설수록 장천은 낯익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버스가 시내의 골목길을 돌아서자 장천의 우측으로 ‘별빛 보육원’이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어? 별빛 보육원? 여기는’


별빛 보육원은 부모에게 버려진 장천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었다. 작은 덩치에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애들 사이에서도 심하게 따돌림당하고 돌봐주시던 보모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구박을 받았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장천은 어른이 되고 나서도 안 좋았던 기억 때문에 이 별빛 보육원을 너무도 싫어했다. 그래서 애써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곳을 이렇게 우연히 30년 만에 지나치게 된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외양은 자신이 어렸을 때와 같아 보였다. 다른 게 있다면 주변의 화마에 휩쓸려 2층이 불에 타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내부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 우연히 탄 버스가 동네를 오다니. 참 어이가 없군. 왜 하필이면 이 동네야?’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있는 별빛 보육원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불길이 일렁이는 2층 창가에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놀란 장천이 눈을 양껏 찌푸려 집중하니 그 검은 그림자가 조금 더 자세히 보였다. 사람이었다. 폭이 넓은 검은색의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가만. 검은색 원피스? 그때 보모 원장이 주로 입었던 옷이잖아? 그럼 저것이 보모 원장? 에이, 아니겠지. 그때도 나이가 꽤 되었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있을 리가 없잖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창문을 보았을 때 검은 옷의 여자는 불이 붙은 상태로 창가에서 비명을 지르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그 여자는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괴상한 비명 소리를 내었다.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여자가 불 속에서 고개를 번쩍 들고는 나를 보며 웃었다.

“돌~아~왔~~구~나. .....장~~천!”

‘뭐? 뭐야? 지금 내 이름을 부른 거야? 지금 저 여자가 불 속에서 나를... 내 이름을 부른 거야?’


장천은 온몸에 소름이 잔뜩 돋아 올랐다. 양팔의 털이 바짝 서 버렸다. 장천은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몸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서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때 누군가 장천의 어깨를 두 손으로 꽉 잡아줬다.

“이봐요. 아저씨? 왜 그래? 정신 차려요”

“저기... 저기 불 속에 있는 여자가 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예? 불? 여자? 무슨 소리요? 이 아저씨. 완전히 맛이 갔네. 무슨 불이 났어요? 여자는 무슨? 안 그래도 무슨 유령도시처럼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서 겁나 죽겠는데 뭔 되지도 않는 소리야? 겁나게. 아저씨. 정신 차려요”

“예? 저기...”


남자를 쳐다보던 장천이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그곳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 하나만 서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불붙은 별빛 보육원도, 검은 치마를 입은 보모 원장도,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불길조차도.

“아니, 분명히... 분명히.. 나는...”

장천은 공포심에 제대로 말을 잊지 못하였다. 그저 패닉에 빠진 채 똑같은 말만 의미 없이 되뇔 뿐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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