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속삭이는 공포 (4-1)

깨어진 봉인 1

by 곰탱구리


“아아악~!”


오늘도 변함없이 악몽에 쫓겨 새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역시나 새벽 3시! 매일 악몽을 꾸고 깨어나는 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3시였다. 그러나 아직도 악몽의 정확한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깊은 슬픔만이 여운이 아련히 남아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악몽은 하루도 빠짐없이 재순이의 밤 시간을 마구 괴롭혔다. 잠을 설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공포심과 함께 가슴을 조여 오는 진한 슬픔이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은 재순이의 심적 타격을 배가 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새벽에 깨면 다시 잠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슴속에 남은 공포와 슬픔을 달래느라 거의 1시간 이상 흐르는 땀과 눈물을 닦아내며 기다려야만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제길. 오늘은 바이어와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꼴이 말이 아니네. 차라리 목욕탕에 가는 게 낫겠군. 뜨거운 방에서 땀이라도 쪽 빼면 좀 나아지겠지.”

한숨을 깊이 내어 쉬고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누... 누구야?”


그때 재순의 놀란 목소리에 자고 있던 아내가 놀라 깨어났다.

“뭐... 뭐여요? 누가 있어요?”

“불! 불 좀 켜봐!”

아내는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어 침대 옆에 있는 램프의 스위치를 눌렀다. 남자의 긴 그림자가 정면에 있는 방문까지 길게 늘어져 누워 있었다. 다행히 자신의 그림자였다.

“여보! 누가 있어요?”
“아... 아냐. 내가 착각했나 보네!”

“여보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잠도 잘 못 자고 중간에 깨어나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 한 번도 이런 일 없었잖아요. 내일 병원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휴~! 요즘 회사가 좀 어려워서 좀 그랬어. 내일은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가기 그렇고 모래나 다음 주에 날짜 잡아서 병원에 한번 가보기는 가봐야겠어. 나 목욕용품 좀 챙겨줘. 목욕탕에 가서 땀이라도 빼봐야겠어.”


커다란 차고의 문이 위로 들리며 아직 잠들어있는 미명의 새벽 골목을 흔들어 깨웠다. 벤츠의 커다란 조명 빛에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도둑고양이가 동그랗게 한없이 커져버린 눈을 깜박거리며 줄행랑치고 있었다. 원래 눈꺼풀이 이렇게 무거웠었던가? 제순이는 인정사정없이 내리 눌려지는 눈꺼풀을 번갈아 가며 힘주어 비벼댔다. 그 덕분에 암흑에 완전히 잠겨버린 골목길이 조명탄이라도 켜진 듯 약간 밝아졌다. 앞집에 있는 커다란 진돗개가 잠을 방해받아 짜증 났는지 높은 정원 경계석 위에 고개를 내밀고 차를 향해 힘차게 짖어댔다.


목욕탕은 고즈넉했다. 찜질방이 같이 있는 24시간 운영하는 곳이라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두세 명의 사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뜨거운 온탕에 몸을 깊게 담근 재순은 노곤해지는 몸을 뒤로 쭉 펴서 기대고 눈을 감은 채 악몽에 대하여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꿈이었기에 이렇게 깊은 감정의 여운이 남는 것일까?’


피곤한 몸이 온탕의 따스함으로 노곤하게 풀리자 서서히 잠이 왔다. 감긴 눈꺼풀에 희미하게 비추던 욕탕의 불빛이 서서히 검게 물들어 갔다. 막 모든 빛이 꺼지는 순간 하얀색의 무언가가 눈의 끝 쪽에서 펄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재순은 순간적으로 눈을 번쩍하고 떴다. 단지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목욕탕 천장만이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아니 그보다 현실이었을까? 아니면 꿈속에서 보았던 것이었을까?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재순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잡념을 떨치려 하였다. 손가락이 쪼글쪼글해져 마치 영화에서 보았던 좀비의 손처럼 느껴졌다.


‘나는 살아있기는 한 것일까? 아니면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는 게 너무 힘드네. 제길. 내일 미팅이 생각한 대로 잘 끝나야 하는데... 걱정이군.”

재순은 고개를 옆으로 떨구며 졸음 속으로 빠져 들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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