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봉인 3
“이거 왜 이러십니까? 아마추어처럼. 여기 일기의 복사본입니다. 물론 그 배에 들어있는 금과 보석에 대한 부분만 가지고 왔습니다.”
남자는 재수가 가지고 온 금괴와 복사본을 주의 깊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덩치 큰 남자가 확실히 금괴는 만주 정권에서 만든 것이 맞는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같이 보물 찾기라도 하자는 것인가?”
“네. 현 시세로 환산하면 최소 8조 이상의 보물입니다. 금액은 5:5로 나누시죠.”
“흠! 계산이 그러면 되나? 8:2! 내가 배와 인원은 물론 처리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데 이래야 계산이 맞지 않겠나?”
“6:4! 싫으시면 저도 다른 곳에 가보겠습니다. 사장님과 경쟁자인 ‘골드문’도 그 정도 능력은 있다고 판단됩니다.”
“흠! 좋습니다. 단,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보험에 가입해 주십시오. 제가 어떤 이유로든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경우 사장님 회사가 제가 지명하는 3,000명의 사람에게 3조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하는 것으로요.”
“3,000명? 뭘 하자는 거지?”
“제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물론 제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조선 정부와 경찰, 검찰 등 고위직에 지금의 상황에 대한 모든 자료가 자동으로 송달될 것입니다. 모두 실명으로요.”
“제법이군. 좋아! 우리 회사가 그렇게 작은 회사도 아니고 5조 이상의 수익을 허망하게 날려 버릴 수는 없지. 내가 생각보다 쾌남이거든. 모든 준비는 우리가 하도록 하지. 출발 전에 연락을 하겠네.”
재순은 남자와 악수를 힘차게 나누고 회의실을 돌아 나왔다. 지하 주차장에 차로 돌아오고서야 재순은 손에 배어 나오는 땀을 자신에 허벅지에 마구 비벼 닦을 수 있었다.
손으로 양 볼을 짝짝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리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간신히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다.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재순의 눈에 살짝 살기가 돌며 입 꼬리가 기묘하게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20일이 훌쩍 지나갔다. 그 기간 동안에도 재순은 계속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매일 동일한 꿈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점은 날이 지나갈수록 꿈속의 장면이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엇인가 하얀 것이 펄럭이는 것이 보였다. 며칠이 지나 보니 그것이 어느 여인의 한복 치맛자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와 먼지로 새까맣게 지저분해진 맨발부터 천천히 위쪽이 기억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전신이 다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얼굴만은 검은 구체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가 않았다. 그녀는 무명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두 팔을 위로 들고 매우 슬프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맺힌 감정이 고스란히 재순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재순은 꿈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재순을 노려보며 어떤 말인가를 내뱉었다. 실제로 그녀의 눈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재순의 귀를 통해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재순의 머릿속에 울려 퍼진 것이었다. 같은 소리가 반복적으로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 !@#$$%, !@#$$%, !@#$$%”
“으아악! 제발 그만. 제발 그만해! 시키는 대로 할게요. 하겠습니다. 제발 이제 그만. 그만해 주세요”
“여보! 무슨 일이야? 이 땀 봐! 왜 그래? 또 악몽 꿨어? 좀 일어나 봐”
재순은 아내가 건네주는 찬물을 정신없이 들이켰다. 두 잔 째 허겁지겁 마시고 나자 겨우 정신이 들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당신 자다가 갑자기 마구 소리 지르며 허공에 손을 막 휘저었어요. 무슨 꿈인데 매일 이러는 거예요? 병원은 가봤어요?”
“그랬어? 병원에서는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하더군. 신경안정제를 주던데 그까짓 것 먹어봐야 뭔 도움이 되겠어. 요즘 회사 재정이 좀 어렵다 보니 자꾸 악몽을 꾸는 것 같아. 며칠만 있으면 해결되니 자기는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자!”
“그래도 매일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나만 편하게 자요?”
아내는 재순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주려고 옆에 있는 협탁에서 휴지를 빼 재순의 얼굴로 가져갔다. 막 재순의 이마에 휴지를 대려는 순간 재순이 아내 쪽으로 고개를 획 돌려 노려보았다. 아내를 쳐다보는 것은 흰자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온통 검은자위만 남아있는 재순의 눈이었다. 희미한 램프 불빛에도 그 검은 눈동자는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재순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괴물처럼 눈 속에서 일렁거렸다. 마치 밖으로 빠져나와 아내를 덮치려는 듯이.
“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