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봉인 5
재순이 지시한 장소에 도착하자 대표는 선장에게 즉시 작업을 개시할 것을 지시하였다. 선장은 잠수부를 바다 밑으로 투입하였다. 20분 만에 올라온 잠수부들은 난파된 배의 존재를 알렸고 화물칸에 있는 3개의 커다란 컨테이너에 대하여 보고하였다. 이에 선장은 기중기를 난파선의 바로 위에 내렸고 잠수부들은 다시 바다로 들어가 인양 작업을 진행하였다.
한 개당 10t이 넘는 무게라 작업의 난항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첫 번째 컨테이너는 쉽게 인양되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서해안의 갯벌 속에 오랜 시간 잠겨있었던 탓인지 외관은 뻘과 따개비 그리고 온갖 불순물로 엉망이었다. 그럼에도 컨테이너의 문은 굳건히 잠겨있었다. 시건장치도 녹조차 슬지 않고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갑자기 잠수부들 사이에서 소란스러운 동요가 일기 시작하였다.
“왜 갑자기 소란들이지?”
“네. 대표님! 잠수부들이 좀 불안스러워합니다. 옛날부터 오래 바닷속에 잠겼던 물건인데도 변한 것 없이 깨끗하게 올라오는 경우 물에 빠져 죽은 원혼들의 원한이 사무쳐 있는 물건일 경우랍니다. 그런 물건은 절대 건드리지 말고 다시 바다로 보내야 한답니다. 안 그러면 저주를...”
“야! 창남아! 그냥 물건이 아니고 금괴다 금괴! 그걸 눈앞에 두고 못 가지는 것보다 더 큰 저주가 어디 있냐? 그리고 21세기에 저주는 무슨. 잠수부들 돈 두 배로 준다고 하고 마저 건지라고 해!”
“그런데 대표님! 저도 기분이...”
창남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순간 대표 바로 옆에서 재순이가 나타나 창남이를 노려 보았다.
“창남 씨는 돈이 싫은가 보네. 저거 다 건지면 창남 씨도 최소 몇 백억은 가질 수 있는데.”
“아닙니다. 바로 진행하라 하겠습니다.”
창남은 재순의 눈을 보는 순간 돈에 대한 욕심보다 공포를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재순은 그런 창남을 쳐다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대표를 보며 다정한 미소와 함께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첫 번째 컨테이너 개막부터 해보시죠.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물론 궁금하지. 반드시 약속한 것이 들어있어야 할 거야. 우리 모두를 위해서. 창남아! 애들 시켜서 저거 열어봐라.”
컨테이너의 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수동 절단기로 자물쇠를 끊어내자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내용물을 갑판에 뱉어냈다. 첫 번째 컨테이너에는 수십 개의 나무 상자와 함께 커다란 금고가 5개가 들어있었다. 나무 상자에 들어있는 것은 관동군이 사용하던 집기와 무기들이었다. 뭐 고고학적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표의 눈에는 쓰레기로 보일 뿐이었다. 견고한 쇳덩어리로 무장한 금고의 정면에는 녹슨 커다란 다이얼이 달려있었다. 대표의 눈짓에 용접공이 달려들어 다이얼을 녹여내기 시작하였다.
20여분이 지나자 금고의 앞부분이 뻥 뚫리며 문이 스르르 열렸다. 오랫동안 바닷속에 잠겨있던 것 치고는 너무도 부드럽게 작동하였다. 금고 속을 들여다보는 대표의 눈은 황홀함으로 가득 찼다. 그뿐만 아니라 갑판 위에 있던 모든 작업자들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금고 속에는 10kg 무게의 금괴가 가득 차 있었다. 창남이의 지시로 한 작업자가 금괴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안에는 총 200개의 금괴가 들어있었다. 다섯 개의 금고에 모두 금이 들어있다면 총 10t의 금괴가 있는 것이었다. 작업자들은 금괴를 다시 금고에 넣고 다른 금고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다섯 개의 금고는 모두 금괴로 가득 차 있었다. 대표의 지시로 기중기로 금고만 화물칸으로 옮기고 상자만 남은 컨테이너는 다시 바닷속으로 던져 버렸다. 불법인양자가 가지고 있기에는 귀찮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컨테이너 까지는 무리 없이 무난하게 작업이 완료되었다. 두 번째 컨테이너도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각종 집기와 무기류가 들어있는 상자와 다섯 개의 금고가 있었다. 아직 재순인가 말했던 다이아몬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세 번째 컨테이너에 실려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세 번째 컨테이너를 꺼내려고 할 때 발생하였다. 인양을 위해 강철 와이어를 걸고 기중기를 작동시켰으나 컨테이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20t 이상 들 수 있는 기중기임에도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가동했음에도 물속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잠수부 팀장이 배로 올라와 이 상황에 대하여 보고를 하였다. 세 번째 컨테이너는 다른 컨테이너와 달리 고정 줄에 묶여있지 않았다. 두 개의 컨테이너 사이에 끼어있었기에 마지막으로 작업을 한 것이었다.
대표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난감했다. 결국 그는 재순이에게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재순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잠수부들의 생년을 묻더니 닭띠 잠수부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뒷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그 잠수부의 목을 그었다. 모든 사람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고 그 잠수부는 급작스러운 행동에 눈만 껌뻑거리다 천천히 쓰러졌다.
“이게 무슨 짓이야?”
“세 번째 컨테이너 꺼내시고 싶다면서요?”
“그게.. 그게 이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도대체 갑자기 사람은 왜 죽인 거야?”
재순은 자신의 품에서 누런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대표에게 건네주었다. 그 종이는 재순의 조부가 남긴 유언이었다. 그곳에는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술적인 단어들이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재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세 번째 컨테이너를 꺼내기 위해 날개 없는 닭의 피를 받쳐야 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날개 없는 닭? 이게 닭띠의 인간이란 말이야?”
“네. 저 잠수부에게 돌을 매달아 바다로 던지세요. 그리고 기중기를 작동시키면 바로 세 번째 컨테이너가 올라올 겁니다.”
그의 말대로 잠수부를 바다에 던지자 기중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였고 결국 세 번째 컨테이너는 간판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세 번째 컨테이너는 외부 모양부터 다른 둘과 전혀 달랐다. 짙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외곽에 붉은색의 글씨로 알 수 없는 주술적 글자들이 컨테이너의 모든 면에 빼곡하게 쓰여 있었고 붉은색과 파란색이 혼합되어 꼬여진 실타래가 컨테이너를 두 바퀴 둘러 묶여있었다.
가장 기괴한 것은 문에 별도의 자물쇠는 없이 노란색의 부적 수십 장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었다. 멍하니 컨테이너를 바라보던 대표가 부적을 잡기 위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재순이 한 손으로 대표의 손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대표의 뺨을 때렸다.
“짝!”
“뭐야? 이 새끼가 죽고 싶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정신 차리세요. 대표님. 나 아니었으면 대표님은 바로 급살 맞아 죽었을 겁니다.”
대표가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갑판 위의 모든 사람이 넋이 나가있다가 대표의 뺨 맞는 소리에 정신들을 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럼 저건 어떻게 열지? 그 방법도 나와있어?”
“물론이죠. 창남 씨! 미안한데 내가 탈 때 가져온 대형 캐리어 좀 가져다주겠어?”
대표는 눈치를 보고 있는 창남에게 눈짓을 보냈다. 창남은 이유 없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캐리어를 가지고 왔다. 재순은 캐리어를 세 번째 컨테이너 앞에 놓고 캐리어의 시건장치를 열었다. 순간 갑판 위에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입을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