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에 속삭이는 공포 (4-6)

깨어진 봉인 6

by 곰탱구리


캐리어 속에는 어린아이가 옆으로 쪼그린 자세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은 시체라고 생각했으나 배가 오르막 내리막 하는 것을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의 속단이었다. 재순이는 잠수부를 그었던 칼로 컨테이너의 외부를 감싸고 있는 꼬여있는 실타래를 길게 잘라냈다.


그러더니 그 실타래로 아이를 둘둘 묶고 들어 올려 컨테이너 문 앞에 있는 부적 위에 들어 올렸다.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사람들이 눈이 모두 아이에게로 몰렸을 때, 재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이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아이는 ‘헉’하는 짧은 호흡 외에는 더 이상의 움직임이나 소리가 없었다. 절명해 버린 것이다. 놀라움에 넋이 나간 사람들과는 달리 재순이는 아이에게서 흘러내리는 피로 부적을 칠해나갔다. 몇 번을 움직여 모든 부적이 피로 물들어버리자 재순은 가차 없이 아이의 시체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재순은 몸을 떨며 마치 주문을 외우듯이 소리쳤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원수의 후손의 피가 주문 속에 스며들 때, 문은 열리리라!”


재순의 말이 끝나자마자 거짓말처럼 컨테이너의 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다른 컨테이너와는 다르게 시체가 썩는 듯한 끔찍한 악취가 안에서 풍겨 나왔다. 열리던 문이 잠시 멈췄다가 ‘끼기긱 끼기긱’ 하는 기괴한 소음과 함께 끝까지 활짝 열렸다.

“이제 안의 물건을 꺼내도 되지?”

“그렇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작은 단지가 하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그것부터 가지고 나오세요.”

일꾼 중 한 명이 대표의 눈짓에 억지로 어기적 거리며 안을 들어가 핏빛의 검은 단지를 가지고 나왔다. 단지에는 예의 붉고 푸른 실타래가 감겨있었고 부적들이 사방을 둘러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이는 제 일곱 살짜리 내 새끼였습니다. 나는... 나는 무엇을 얻으려고...”


제순이는 피가 가득 묻어있는 손으로 단지의 부적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힘껏 뜯어버렸다. 순간 단지 안에서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고통에 물들어 내는 신음소리 같은 비명이 2~3분간 계속 이어졌다. 갑판 위의 사람들은 모두 귀를 막고 괴로워하고 있었으나 재순이 만은 단지를 내려다보며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그때 창남은 보았다. 단지 속에서 수십, 수백의 무서운 형상이 튀어나와 자신들이 배를 둘러싸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을. 끔찍한 광경이었다. 창남은 온몸이 굳어져 서있는 채로 오줌을 싸고 있었다.


“사토미 하지메가 어떻게 이 많은 군자금을 모았는지 아는가? 마약을 판 돈도 있지만 사실은 731부대에 납치되어 온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한 것들이지. 때론 재산을 빼앗기 위해서 731부대로 가족 전체를 납치하기도 하였고. 그들은 잔인한 실험의 도구로 사용되었지. 때로는 자기들이 유흥을 위해서, 심심해서 죽이기도 했고. 그리고는 원혼의 복수를 막기 위해 일본에서 술사를 데려다 한 곳에 영혼을 가두어 버렸어."

"그리고 산채로 씹어먹어도 부족한 원수들의 재물을 지키는 지박령으로 이 배에 묶어 놓아 버렸지. 수천, 수만의 원혼들이 작은 항아리에 갇혀서 수십 년 동안 소리치고 저주하고 원망하며 너희 놈들의 심장을 씹어 먹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인간의 욕심은 참으로 무서운 거였어. 돈이 부족해진 사또 히로부미의 손자가 결국 일부 훔쳐간 재산에 끼어있는 봉인을 깨트리게 되었지. 마지막 금괴만은 손대지 말라는 조부의 경고를 무시하였기에 내가 나올 수 있었지.”


“헉! 너. 너는 누구냐?”


“나? 731부대의 지하 실험실 구석에서 모정을 실험하기 위해 불타오르는 쇠로 된 방에서 아들과 같이 갇혀 타 죽은 조선의 ‘김 모성’이다. 너희들은 작은 구멍으로 내가 아이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올라서서 목숨을 구걸하기를 바라며 내기를 하고 비웃고 조롱했지."

"난 새까맣게 타버린 두 발로 서서 아이를 머리 위에 들어 올린 채 너희들을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너희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아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을 반드시 보겠다고 되뇌고 되뇌었다. 봉인이 풀리자마자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원수의 자식을 이용하여 갯벌 속에 수십 년간 갇혀있는 원령들의 봉인을 풀고 원한을 풀려고 하였지."

"이제 731 부대의 지하에서 원통하게 죽었던 수십, 수백의 원혼들이 풀려났고 나는 원수의 자식을 원수의 손으로 죽게 만들었으니 더 이상 세상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지옥으로 가겠지만 너희들도 그리고 지금 일본에서 우리가 흘린 피로 죄의식 없이 살고 있는 원수들의 장손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너희의 목숨으로 억울한 영혼들의 진혼을 달랠 것이다. 그리고 이 배는 바닷물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갈 곳 없는 원혼들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죄가 없잖소.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주세요.”

“너희의 죄는 탐욕이다. 동료의 죽음에도 어린아이의 죽음에도 금괴의 유혹에 빠져 모두가 침묵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731부대의 원수들과 다른 점이 뭐지? 내가 살려줘야 할 이유가 뭐지?”


그때 재순이 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 붉은 단추를 눌렀다.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배의 기관실에서 폭탄이 터지기 시작하여 서너 차례의 폭발이 이어졌다. 배는 서서히 기울어져 바닷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침몰한 배는 기존에 있던 배의 위에 가라앉아 그 배를 대신하여 똑같은 모습으로 갯벌 속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자신들을 얽어 매고 있는 봉인을 깨뜨려 주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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