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까? - 하나. 버려라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는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말이다. 해골물도 마음에 따라 감로수보다 더 달콤한 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실일까?
그렇다 분명한 사실이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벌레 공포증이 있다. 다리가 하나도 없거나 10개가 넘어가는 벌레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사실 국민학교를 다녔다) 우리 집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축대 아래에 살고 있었다. 1970년대 초였고 그 당시에 가장 많이 심던 플라타너스(버즘나무)가 축대를 따라 일렬로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플라타너스는 넓은 잎과 습한 환경 덕분에 쐐기벌레, 송충이 등 곤충이 자주 모여드는 나무였고 이 초등학교의 이사장이 매우 구두쇠라는 것이었다.
돈이 아까워 농약을 뿌리지 않고 여름을 보내려다 보니 나무에는 온갖 벌레가 다 꼬여서 한가득 이었다. 약 2m 정도의 축대가 완전히 송충이로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동네 어른들께서 드럼통에 기름을 붓고 축대를 삽으로 긁어 송충이를 정기적으로 태워 죽였을까?
그 광경은 지금도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탓에 나는 벌레를 병적으로 싫어했다. 그냥 심리적인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벌레를 보는 순간 등이 미친 듯이 가려워진다. 공포의 마음이 실제로 몸에 작용하여 가려움 호르몬을 발산해 내는 것이었다.
단순한 간지러움이 아니고 실제로 등이 붉은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물론 지금은 그 공포의 강도가 많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름이면 나무 밑에 절대 가지 않는다. 가더라도 빠르게 벗어나 뜨거운 뙤약빛 밑을 고수한다. 그래서 은행나무를 좋아한다. 비록 조금 냄새는 나지만 가을의 한 순간만 참으면 그늘도 제공하고 아름다운 낙엽도 제공해 주기에 너무 좋다.
말이 좀 길어졌지만 나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을 직접 몸으로 겪어 봤기에 그 말이 확실히 맞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은퇴자는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까?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 그리고 지혜가 가득한 선인들에게 물어보면 두 개의 답으로 귀결된다.
'버려라'
그냥 버리는 마음이 가장 좋은 마음일 것이다.
욕심을 버려라.
남과 비교함을 버려라.
'조금만 더'라는 말을 버려라
그뿐이랴
끝이라는 생각을 버려다
'더 이상은'이라는 마음을 버려라
'이제는'이라는 단어를 버려라
버리면 얻게 된다. 나라는 본질을.
은퇴 전까지 나를 둘러싸고 보호해 주는 사회적 위상과 경제적 능력 그리고 직위와 명예 간은 갑옷이 벗겨지면 그저 신 앞에 선 아담처럼 빈 몸으로 서게 된다. 그냥 나뭇잎 한 장 손에 든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죄인이라 구박하지 말고 어여삐 여겨라. 나의 본질을 그대로 나라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은퇴를 하고 늙어갈수록 왜?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왜는 불만족스러운 현재의 원인을 과거에서 불러오게 된다. '왜 나는 지금 이렇게 돈 없이 힘들게 살아야 해?'라는 질문은 왜 나는 돈 많이 주는 직장을 들어가지 못했을까, 왜 나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을까, 왜 나는 돈 많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을까? 까지 원초적 부정의 세계로 자신을 몰아넣게 된다.
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도 버려라.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이다. 돈이 부족하네. 어떻게 할까? 저 놈보다 마음이 행복하지 않네. 어떻게 할까? 이런 태도가 가장 필요하다. 은퇴하고 나면 더 이상의 왜는 없다. 현재의 상태에서 어떻게 해결하고 극복해 나갈 것인가가 가장 좋은 태도이다.
버려라. 모든 것을 버리면 행복해진다. 자존심? 결코 밥 먹여주지 않는다. 경쟁심? 쫓아가다 지쳐 죽는다. 허영심? 뭘 입고 뭘 타도 늙음은 절대 감춰지지 않는다.
다 버려라. 그저 자신만 있으면 된다. 자존감만 있으면 된다. 나뭇잎 한 장 들고도 헐벗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마음속에서 행복이 스스로 솟아오르게 된다. 은퇴 후는 행복하여야 한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도 사 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