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특별한 하루를 보내다

언니의 용기

by 연두

05화 잘 다녀와, 코코

<지난 이야기>


<지금까지의 이야기>

내 이름은 코코. 포그니 왕국에 사는 강아지 인형이다.

어느 날 동생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들은 언니, 오빠들의 수련 이야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수련을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나는 수련 출정식까지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다 극적으로 신의 부름을 받아 내가 모르는 세 가지 요소를 알아내야 한다는 조건으로 인간계에 가는 포털을 타고 그곳으로 향한다.

너무 빠르고 어지러운 포털 때문에 나는 인간계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는데, 내 앞에 있던 이불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주워 나 같은 봉제 인형들이 모인 매대에 올려놔 나는 그곳에서 불시착하게 되었다.

가게를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 중에 나를 데려갈 사람은 없을까, 봉제 인형들 중에 예쁘고 멋진 인형들만 골라가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슬퍼 눈물이 나오려던 그때, 인상 좋은 할아버지와 해맑은 웃음을 가진 어린 소녀가 나타나 눈이 마주치자, 나를 선택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예나. 예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외동딸이었고, 공주님 같이 살고 있었다.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가 나에게 한 첫 부탁은 자신에게 '언니'라고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동생이 되어 달라는 그녀의 말에 나는 동생들만 생각하는 우리 가족들 때문에 동생이 되고 싶었던 때가 생각 나 바로 수락한다. 그렇게 나는 예나의 동생이 되어 인간계 수련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우리가 처음 본 날 언니는 8살이었는데 벌써 11살이 되었다.


나와 함께하는 3년 동안 언니는 나를 정말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소중하게 대해주었다.


매일 아침마다 잘 잤냐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볼 뽀뽀를 해준다. 또한 언니가 학교에 가는 날이면 나가기 전에 부랴부랴 책가방과 실내화가방을 챙긴 뒤 해맑게 웃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한다.


"코코, 언니 학교 다녀올게! 집에 잘 있어!

너도 언니랑 같이 학교 가면 좋을 텐데.."


"나도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아.

저녁에는 언니랑 실컷 놀 수 있으니까!"


"네 말이 맞아! 언니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그때 실컷 놀자!"


"그래, 알았어! 언니 학교 잘 다녀와!"



사실, 내가 언니 집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언니가 나를 학교에 데려가고 싶다며 크게 울면서 때를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학교에 인형을 가져가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를 학교로 데려가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계에선 인형이라는 존재가 물건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어딜 혼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게 큰 흠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학교에 가는 날은 방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해서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언니는 밤마다 부모님 몰래 방문을 꼭 닫은 뒤 방의 불을 끄고 나랑 침대에 나란히 누워 우리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며 언니가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또는 내가 모르는 인간계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 생생해서 직접 해보지는 못하지만 항상 머릿속에서 상상이 되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내가 알고 싶었던 인간계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가끔 언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소곤소곤했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있어 엄마가 방에 찾아와 왜 이렇게 혼자 소란스럽냐며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주시기도 했다.


나랑 대화를 하는 것이 들켰을까, 불안했지만 그럴 때마다 언니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며 친구랑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고 거짓말을 한 덕에 엄마에게 들키지 않고 우리만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게 늘 밝게 웃기만 했던 언니가 잘 웃지도 않고, 무표정이거나 우울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해주던 잘 잤냐는 인사를 웃으면서 해줬었는데, 이제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해주고,

볼 뽀뽀는 해주지도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밝고 명랑한 예나 언니가 아니었다.


언니는 기운 없는 발걸음으로 책가방을 챙기고 나를 보며 다녀온다는 말을 한 뒤 다시 터벅터벅 방문을 나섰다. 언니와 부모님과의 대화를 살짝 엿들어보니, 부모님께서도 기운 없는 언니를 걱정하고 있었다.


"예나야, 요즘 무슨 일 있니? 기운이 없어 보여."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일 없어요."


"어깨도 축 쳐져있고, 얼굴이 반쪽이 됐는걸.

우리 예나, 원래 잘 웃는데 요즘은 통 웃지도 않고."


"제가 꼭 웃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예나야! 밥은?"


"안 먹을래요. 입맛이 없어서요."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


"싫어요. 안 먹는다고요!

저 다녀올게요."


"아니, 얘가! 예나야! 장예나!"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렇게 무뚝뚝한 예나 언니는 정말 어색하다.

나도 너무 걱정되고 궁금해서 그날 밤에 잠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 언니에게 물어봤다.


"언니, 요즘 무슨 일 있어? 요즘 잘 웃지도 않고, 기운도 없어 보이는데,,"


"아니, 무슨 일 없어 코코."


"거짓말하지 마. 요즘 통 기운도 없고, 밥도 잘 안 먹고, 나랑 대화도 잘 안 하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치, 그런 거지? 어서 말해줘!"


"아니, 그런 일 없다고!!"


".. 어?"


"아무 일도 없는데, 자꾸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하라고 하는 거야?"


"나는 언니가 걱정돼서.. 부모님도 걱정하시고.."


"아무 일도 없어. 그러니까 나 좀 제발 내버려 둬!

나 그만 잘게, 더 이상 말 걸지 마."


"언니.. 그렇게 얘기하면 나 정말 속상해..."


언니의 냉랭한 말투에 나는 또 다른 마음 한구석이 쓰라렸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토요일이 되었다.

주말이라 언니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었다.


예나 언니의 컨디션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대화를 더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나보다 먼저 일어난 언니가 화장실에서 씻고 방으로 돌아오더니,

갑자기 침대에 있던 나에게 차분한 말투로 먼저 말을 걸었다.


"코코, 쉬는 날이고 밖에 날씨도 화창한데, 오늘은 언니랑 어디 나가보지 않을래?"


".. 어? 그럼 나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야?"


"그럼. 나랑 나가면 너도 밖으로 나갈 수 있지.

사람들 앞에서 움직이지만 않으면 말이야."


언니가 갑자기 웬일이지. 밖으로 나가자고 하고. 언니가 컨디션이 전보다 조금 나아진 건가 싶었다.

무엇보다 언니가 다시 먼저 말을 걸어줘서 나는 매우 기뻤다.


"우와~! 그럼 나 갈래!

사실 나 방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어..ㅠㅠ"


"그래. 그동안 방안에만 있어서 답답했지? 밖에서 바람도 쐬고,

그동안 언니랑 코코랑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오자."


"좋다 좋다! 지금 당장 나가자!"


"그럼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나갈 준비 해야 하니까."


"알았어!"


언니는 밖으로 나갈 준비할 게 많았는지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언니가 드디어 방으로 돌아왔다.

"미안해 코코, 언니가 오래 걸렸지? 이제 갈 준비 다 했어. 이제 나가자."


"아니야, 괜찮아! 나 별로 안 기다렸어! 우리 빨리 나가자!"


언니는 학교 가는 날도 아니었는데 이것저것 챙겼는지 등에 책가방을 맸다.

나는 밖에서 움직이면 안 돼서 언니가 한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 같이 생긴 가방에 들어간 채 집을 나왔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언니는 목적지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 듯했다.

잠시 뒤, 언니가 나를 가방에서 꺼내주면서 말했다.


"코코, 여기야."


"어..? 우와!!"


가방에서 나온 그 순간, 눈앞에 보이는 환경이 정말 멋졌다.


푸른 하늘과 날아다니는 새들, 하늘 높이 솟아나 있는 산과 밑에 흐르는 물까지!

언니가 먼 길을 걸어서 온 이곳은 집 앞 공원이 아닌 자연 어딘가의 한 공간이었다.


나의 머리와 두 귀를 스치는 바람은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다.


"와, 여기가 인간계구나..."


순간, 인간계에서의 인형에 대한 시선이 떠올라 순간 멈추었지만,

언니가 이곳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고 여기서는 마음 편하게 움직여도 된다고 했다.



언니는 그 자리에서 등에 메고 있던 책가방에서 돗자리를 꺼내 핀 뒤,

언니가 먹을 간식과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그리고 늦가을이라 조금 쌀쌀한 날씨 탓에 담요를 꺼내서

나랑 언니랑 나란히 덮었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나를 처음 만났던 날, 언니는 기념이라며 하얀 도화지에 조그마한 손으로 나를 예쁘게 그려서 방벽에 붙여두었다. 그 그림은 지금까지 붙여져 있다.


언니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정말 좋았다.


나, 코코도 예나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인형이 주인을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언니랑 나는 그곳에서 눈앞에 있는 멋진 풍경도 그리고, 멍을 때리기도 하고,

그동안 못했던 일상 이야기도 하고,

오늘은 너무 신나서 언니 앞에서 춤추면서 조금 재롱도 부려봤다. 그랬더니 언니가 조금 웃었다.

하지만 기운이 없는 건 여전하다. 겉은 조금 웃고 있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거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언니를 바라보는데, 언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꺼냈다.


"코코, 귀여운 춤 보여줘서 고마워. 그동안 언니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걱정 많이 했지?

너랑 대화도 잘 안 하고.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언니. 물론 나도 속상했지만 언니가 걱정 됐는걸."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러면 언니, 이제는 말해줄 수 있어?"


"응? 뭐를?"


"언니가 요즘 들어 왜 그렇게 기운이 없었는지.

나도 걱정되지만, 언니 부모님이 걱정을 더 많이 하셔.

무슨 일이 있었던 거 맞지?"


"응, 맞아. 말을 할 용기가 없어서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어."


"나에게도 말 못 할 일이야?"


"너한테도 말할 용기가 없었어. 그래서 내가 오늘 여기 오자고 한 것도 말할 용기가 필요해서 그런 거였어. 그렇지만 이제는 말해보려고.

너랑 오랜만에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더니 용기가 조금 생겼거든."


"좋은 생각이야 언니, 나는 언니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언제든지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그게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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